1일 1커밋 #132
어느 운동 유튜버는 '수치화'를 해서 명확한 목표를 잡아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모든 건 어떻게든 '수치화'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모로 감명적인 말이었고, 이것 저것 재지 않고 그냥 달려들어서 운동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그런 말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말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든 걸 '수치화'한다는 말의 무서움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나의 감정도 수치화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지극히 무형적이고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그걸 수치화한다는 건 왠지 문과적 마인드를 억지로 비틀어서 이과적 마인드로 바꿔버리는 그런 기분 나쁨이 묻어났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는, 좀 더 나아가서 게임 프로그래머는 사실 일상적으로 수치화해야 한다. 게임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수치화의 산물인 것이다. 공방 공식은 어떻고, 움직일 때는 1초에 얼마나 움직이며, 뭐 그런 것들은 사실 인간의 행동을 완전히 수치화해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에 가까운 일이었다. 앞서 말했던 감정을 수치화한다는 것도 사실 게임 속에서는 일상에 불과했다. 그 고전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만 봐도 '딸'의 능력치와 감정 같은 것은 완벽히 수치화해서 화면에 전시된다. 생각하면 조금 소름 돋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딸을 그렇게 '수치화' 해서 바라본다는 건 어떻게 보면 '육아'와는 완벽히 다른 방식이지 않나 싶으면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치화하는 걸 당연하게 체화해 버린 건 아닐까 , 그런 식의 걱정도 슬금 피어난다.
그리고 게임의 기계적인 수치화는 게임 내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판매량, 온라인 유저 수, 게임을 언급하는 글의 수, 수익 등등 개발자에게는 외적인 수치가 사실 더 중요하다. 삶과 직결되는 수치화인 것이다. 나의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는 수치화. 얼마나 중요한지 구글과 스팀을 위시한 수많은 게임 퍼블리셔들은 유저 수를 시간대 별로 나열해 주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무엇을 소비했는지까지 차트로 이쁘게 표시해 준다. 개발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개발자가 잘 아는 것이다. 사실 당장 브런치만 봐도 그런 기능이 떡하니 붙어있다. 마치 글들에 대한 순위라도 매기듯이 수많은 수치화들이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여기서 맨 처음 언급했던 운동 유튜버의 말이 진실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브런치가 해주는 수치화도 확실히 목적에 대한 동기부여로 잘 동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에도, 게임에도, 프로그래밍에도, 내가 가진 수많은 목표들에도 이런 눈에 보이는 수치화를 적용시키면 정말 유효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었다. 실제로 뽀모도로 기법 같은 것은 그런 부가적인 동기 부여를 노리는 기법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수치화가 두려울 이유가 뭐가 있을까? 내가 느끼는 이 차가운 두려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담담히 다른 것들을 수치화하면서 두려움의 근간을 더듬어 올라갔다. 뭘까, 뭘까. 마치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뒤지듯이 마음을 뒤적거렸다.
나는 마치 제삼자라도 된 것처럼 다른 것들을 수치화해 나갔다. 수치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이것저것 요것조것 모두 수치화, 타산화, 아무튼 숫자와 연관시켜 나갔다. 하지만 거기에는 내가 배제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타인에게는 수치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는 숫자 1로밖에 보이지 않을 그런 가능성. 분명히 그럴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 마음을 뒤흔드는 두려움이었다. 수치화가 인간성을 얼마나 해치는지, 딸의 능력치를 수치로 조절하면서 체득했기 때문에.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결국 수치화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무서웠다. 이를테면, 물건에 가격을 메기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몰개성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해나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