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을 하는 데에 어떤 주기 같은 것이 있다. 왜 그런고 하면, 나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집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서 내가 드라마를 시청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드라마를 보는 방법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큰 줄기로 묶어서 두 갈래로 나눈다면 한편 한편 끊어서 잘 보는 사람 파와, 하루 날 잡고 앉아서 그 자리에 도미노처럼 드라마를 촤르륵 세워둔 후에 한 번에 와르르 넘어뜨리듯 보는 사람 파가 있을 것이다. 비유의 디테일을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후자이다. 후자의 장점이라면 뭐가 있을 것인가. 우선 흐름이 끊기지 않고, 그런 만큼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흡입력 있게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런 만큼 후폭풍이 강렬해서 빨려 들어간 마음을 회수하는데 한참이 걸리곤 한다는 점은 단점이다. 장점이 좋은 만큼 단점도 확고해서, 그렇게 과식하듯 스토리를 섭취하고 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현실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예컨대 엔딩을 맞이한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혼자 괜히 훌쩍이거나 함박웃음을 짓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고 있으면 나의 현실이 왠지 남의 것처럼 낯설어서 도저히 돌볼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방금 전 완전히 끝맺음을 한 스토리를 혼자서 끝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인터넷을 들쑤시며 그다음을 찾거나 상상하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걸 그만두는 데에는 꽤 긴 시간과 정력이 들고 그만큼 내 삶은 무너진다.
드라마를 한 방에 몰아서 소화해 버리는 방식은 게임, 특히 스토리가 있는 게임에도 유효했다. 장점과 단점까지도 말이다. 다만 게임은 하루 날 잡고 한방에 몰아서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만이 차이점이었다. 내가 느끼는 피로라고는 눈의 뻑뻑함밖에 없는 드라마 같은 것들과는 다르게, 게임은 수많은 피로를 야기했다. 컨트롤러를 꾹꾹 눌러야 하는 외적인 피로부터, 각종 전략과 아이템 조합을 생각해야 하는 내적인 피로까지. 나는 사실 게임을 좋아한다기보단 게임에 묻어나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 외의 게임의 의도적인 스트레스들을 못 견뎠다. 가장 쉬운 난이도로 플레이했고, 그럼에도 피로해서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은 잘할 수 없었다.
내 스토리에 대한 집착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었다. 게임이 주는 그 피로감을 이길 수 없으면서도 스토리는 궁금하고, 또 유튜브 등의 게임 외적인 방법으로 스토리를 알아내는 건 마치 치팅을 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통증을 하염없이 견디면서도 게임을 해나갔다. 아무튼 다음이 궁금했고, 그만큼 차근차근히 일상은 게임에 침범당한다. 해야 할 일의 순위 가장 상위에 게임 진행하기가 랭크 인한다. 온갖 나의 일상적 활동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한 칸씩 뒤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나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피로감밖에 없는 게임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야 만다.
결국 엔딩을 보고 난 후에는 그 과정이 지난했던 만큼 더욱 큰 후폭풍을 맛본다. 드라마의 엔딩을 보고 난 후의 마음이 지점토라면,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난 후는 물을 잔뜩 먹는 찰흙 같은 것이었다. 만지면 미끌거리고 바닥은 온통 더러워지고 그러면서도 원하는 모양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정이 그런 터라 원래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기까지 또 고난의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마음대로 주물러지지 않는 찰흙 앞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게임이든 그를 앞에 두고는 마음이 심히 쪼그라들고 만다. 택배 언제 오나, 배송 정보를 수차례 들락날락거리다가도 막상 도착하고 난 후에는 심드렁해지는 그런 심정, 거기에 그런 개인적인 두려움을 몇 스푼 끼얹으면 바로 게임 앞에 선 내 마음이었다. 엔딩에 다다르기 전까지 있을 그 고난의 행군, 그리고 그와 함께 차츰차츰 무너져 내릴 일상들이 눈앞에 선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 그렇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게임을 안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게임을 하지 않고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은,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일정한 주기를 두고 나의 일상을 망가뜨렸다 고쳤다 반복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요 최근에는 차선책을 발견했다. 템포가 길지 않은 게임을 하면 아무튼 '게임을 한다'는 조건은 만족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잘 맞는 게임은 격투 게임이었고. 뭐, 조금(많이) 현실을 회피하는 듯한 차선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 게임은 그 본문을 다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렇겠지. 그런 자기합리화적 잡생각을 하면서 게임 라이브러리의 '길티기어 스트라이브'라는 글자를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