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이어폰에 대처하는 방식

1일 1커밋 #135

by 김디트

얼마 전, 이라고 해도 벌써 꽤 오래된 듯 하지만, 아무튼. 무선 이어폰이 고장 났다. 사실 유선 이어폰이 고장 난 경험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무선 이어폰 고장은 처음이었다. 무선 이어폰은 선이 끊어질 일이 없으니 고장도 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터라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아니, 무선 이어폰이 고장도 나는 거였어? 당연하지만 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선 이어폰과 그 고장의 메커니즘까지 흡사했다.


고장은 이런 메커니즘을 거쳤다.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 이어폰의 소리가 이상해진다.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까지는 아니고 들리지만 뭔가 께름칙하게 들린다는 수준으로 이상해진다. 절망스러운 점은 잠깐 그러다 이윽고 괜찮아지는 점이다. 희망이 있으므로 더더욱 절망하게 된다고 했던가. 이거 잠깐 이러다 말겠지, 하며 희망 회로를 윙윙 돌리지만, 슬슬 그 간격이 짧아지고 이제 안 들렸다 들렸다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아 이거 고장이 나려고 하는구나 완전히 직감, 좌절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 내 안에 잠들어있던 수리공이 깨어나 빙의되는 순간이다. 유선 이어폰을 한창 사용하던 시절에는 이어폰 줄의 일정 부분만 직선으로 유지되면 소리가 잘 들린다는 점에 착안해서 테이프를 둘둘 감는다거나 다른 선에 덧대어 클립을 꽂는다거나 별 짓을 다 해봤다. 정말 이어폰 수리공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들을 모두 끌어모으면 아마 그것들이지 않을까. 그런 임시 조치는 잠깐이나마 잘 작동하는 척한다. 그렇지만 순간일 뿐. 결국 그 수리의 흔적이 오히려 선을 자극해서 결국의 결국 선을 끝장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만을 뒤늦게 깨달을 뿐이다. 그렇게 사라져 간 나의 이어폰들. 몇 개나 되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무선 이어폰도 비슷했다. 돌팔이 수리공의 별 헛짓거리들(두드린다거나 닦는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을 거치고 난 후 결국 오른쪽 이어버드의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고 말았다. 하필 애인과 7주년 식사를 하러 나가던 차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어마무시한 상실감을 안고 애인을 만나야 했다. 사회생활을 한 짬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분으로 7주년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때때로 시무룩했고 애인은 그런 나를 토닥이며 '이어폰 사줄까?!' 발을 동동 굴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회생활의 노련함 같은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 고장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이 이어폰을 구매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계는 이렇게 쉽게 고장 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아직 보증 기간이 매우 넉넉하게 남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작은 택배 박스 안에 이어폰과 구매 증빙 서류 등을 꾸깃 꾸깃 넣으면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 이어폰은 유명한 음향 회사의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심술이 났다. 게다가 난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되도록 반출하지 않는 사람이다. AS든 반품이든 중고 거래든, 물건을 반출하는 경험에 대한 경험치가 지극히 낮았다. 문장으로 설명하면 짧기만 한 그 AS 절차가 이렇게 귀찮고 또 귀찮고 또 귀찮은 것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걸 생각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게 맞겠지만.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보낸 이어폰 AS는 내가 겪은 우여곡절의 길이만큼 정말 정말 오래 걸렸다. 하필 내가 택배를 보낸 시기와 그 회사의 여름휴가 기간이 딱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의 인권을 생각하면, 그 복지를 마땅히 누려야 함이 당연했기 때문에 나는 굳이 보채지 않았다. 아마 보채지 않아서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결국의 결국 이어폰이 나의 손에 들어온 것은 바로 어제. 나는 얼른 택배 박스를 뜯어서 이어폰을 다시 페어링 했다. 이어폰은 다시 원상태로 말끔히 돌아와 있었다. 원상태가 된 것인지 기존의 것을 새것이 대체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경험적으로는 원상태 그대로였다. 노래도 양 쪽으로 잘 흘러나오고.


그렇게 한 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하필 어제, 오랜만에 켜본 닌텐도 스위치가 고장이 나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에러를 내뱉었고, 와이파이 목록은 갱신되지 않았다. 으아아악, 나는 마음속으로 괴성을 지르면서 다시 스위치 구매 박스며 영수증을 찾기 위해 박스 더미를 뒤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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