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136
어릴 때부터 영화를 참 좋아했다..., 는 건 역시 거짓말이다. 참 좋아했다에서 '참'이라는 부분이 까끌거려서 도저히 긍정하려야 긍정할 수 없는 문장이라고나 할까. 현실적으로는 남들이 좋아하는 만큼은 좋아했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뜬금없지만 어릴 때, 폭죽을 정말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유우우웅- 피식 하고 끝나는 게 대부분인 시시한 것들 뿐이었지만 그게 그렇게나 좋았다. 피유우우웅 하는 부분도 좋고 피식 하는 부분도 좋았지만, 그걸 터뜨려주는 사촌 형이 정말 좋았다.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으로 어떻게든 따라붙으려 하는 동생들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빠져나와서 문방구로 들어서는 그 과정이 좋았다. 아마 그 첩보 작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 같은 폭죽이어서, 그게 마치 사촌 형과의 유대감을 공고히 해주는 것만 같아서, 아무리 시시한 폭죽이었더라도 유별나게 좋았던 것이다. 영화도 폭죽과 비슷한 이유로 좋아했다. 영화관에서 볼 때는 그것대로, 비디오방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볼 때는 또 그것대로, 함께 보는 이들과 쌓아가는 그 유대감 비슷한 것이 좋았다. 영화가 주는 감정선을 함께 공유하는 것 역시 유대의 일종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친구들과 함께 맞이하는 영화의 크래딧은 내 옛날 폭죽놀이의 그 피유우우웅- 피식과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영화는 유대감의 징표로도 좋았지만 혼자 사용할 때도 꽤 요긴했다. 뭔가를 깨부수고 폭발시키고 흔들고 놀래키고 하는 건 말초신경의 끝자락까지 쉽게 다다랐으니까. 로맨스 영화나 뻔한 신파극이나, 둘을 모두 섞은 것들을 좋아했다. 한때는 시간만 나면 '슬픈 로맨스 영화'를 찾아서 인터넷을 하루 종일 뒤지곤 했다. 내 흥미를 끄는 영화들을 하나 하나 섭렵할 때마다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점점 인터넷 뒤지는 시간만 늘어났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 시절의 나는 아마 미약한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 깊고 어두운 슬픔 속으로 어떻게든 파고들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었고, 영화는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계기는 뭐였을까. 여러 복합적인 계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책을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일을 조금 더 꼼꼼히 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세상의 뒷면에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그런 저런 계기를 통과하고 난 후. 나는 영화를 '유대감', '감정 쓰레기통' 이외의 쓸모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영화는 명확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고, 어떤 영화는 은근히 돌려서 연애 이야기인 척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어떤 계기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분명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들일 뿐이었는데. 그 지루하고 따분한 것들이 어느새 완전히 내 안에서 명작 영화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마치 진지하고 논리 정연한 글을 대할 때처럼, 그런 영화들은 켜기 전부터 몸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머리를 팽팽 돌리기 위해서 준비 운동 같은 걸 해두어야 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재미있지만, 분명 피로한 일이다. 한때는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굳은 마음을 먹게 만드는 영화를 보리라 마음먹었었는데, 역시나 그건 꽤 힘이 빠지는 일이었고, 이제는 그만둔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요새는 힘을 빼고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힘을 너무 뺐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에는 흔히들 말하는 '카우치 포테이토'가 되어서 의식을 빼놓고 TV를 시청했다. 그러니까, '피유우우웅- 피식' 하는 영화들만 연이어 바라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왠지 모를 두통 때문에 영화 보길 멈추는 것도,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말에 하려 했던 많은 소일거리들이 얼핏 떠올랐지만, 눈앞에서 터지는 폭죽이 아무래도 더 중요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 종일 도망치듯 영화를 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