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134
더운 날이 지속되다 보면 아무래도 갈증에 시달린다. 시원한 얼음을 컵에 넘칠 듯이 담아서 색색깔의 음료를 가득 채우고는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쏟아붓는 건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청량감이 넘쳐흐른다. 탄산이 섞인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목청을 마구 할퀴며 지나가는 그 톡톡이들. 더울수록 그 파바박은 더 강렬하다. 아마 더위 때문에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져서 손톱을 더욱 세우는 게 아닐까.
끈적거리는 날씨는 더위를 더욱 보챘다. 웬만하면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나도 이런 날씨 속에서는 정말이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스커피를 시킨다. 커피는 온도에 따라서 그 뉘앙스가 정말 많이 달라지니까 되도록 많은 온도를 거치며 마실 수 있는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나의 어쭙잖은 지론도 더위 앞에는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고소하면서 씁쓸한 커피를 마지막 방울까지 탈탈 털어서 마시고는 밑바닥에 남은 얼음들까지 싹싹 긁어서 입 속에 쑤셔 넣고 와드득 와드득 깨물어 먹는다. 얼음을 깨부숴 먹는 건 치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도 마치 젠가 쓰러지듯 손쉽다. 와그작 와그작 깨물어 먹는다.
날씨가 한풀 꺾였다.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오전에 회사 동료분에게 '날씨가 한풀 꺾였네요'라고 사담을 건네면서 점심시간을 기해서 잠깐 밖으로 나섰다. 동료 분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는 집에 가서 에어컨을 꺼야겠어.'라고 첨언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밖으로 나서자마자 우리가 내뱉은 그 말들은 쏘옥, 옛날 미국 애니메이션 속 도망치는 동물들, 예컨대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부리나케 사라졌다. 태양이 피부를 찢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뙤약볕이었다. 회사 동료분은 '아직 덥잖아!' 비명처럼 소리쳤다.
이런 더위에는 아무리 평소에 그다지 즐기지 않는 것도 단지 그 청량감 때문에라도 무진장 땡기게 되게 마련이다. 특히 바로 앞에서 '치익!'하고 '꿀꺽꿀꺽' 하는 소리가 필터링 없이 생생하게 들려오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이슬이 송골송골 맺힌 맥주에 대한 이야기다.
동생은 제법 주당이다. 주당에도 두 가지 갈래가 있다면, 그러니까 무진장 취하는 기분을 즐기는 타입과 맛과 향과 적당히 취하는 기분 등을 복합적으로 음미하는 타입이 있다면 동생은 후자의 타입에 속했다. 제법 미식가에 가까운 편인 동생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은지 정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치킨에는 맥주, 삼겹살에는 소주, 음식에 있는 궁합은 물론이거니와 환경까지도 적절하게 잘 활용할 줄 알았다. 사우나에라도 들어가 있는 듯한 온도에는 얼어붙을 듯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 이것도 어찌 보면 완벽한 궁합에 가까운 것일 테니. 동생은 냉장고가 빌세라 맥주를 사 와서 가득가득 채워놓곤 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술이 약한 나라도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맥주 355ml 정도면 알딸딸해지고 미각이 마비되어서 더 술을 마시는 게 고역이 되는 그런 상태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첫 모금, 혓바닥을 적시는 고소하고 달짝지근하고 톡 쏘는 그 첫 모금의 희열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에 기어이 맥주 한 캔을 따서 내 키보드 옆에 위치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 첫 모금은 그 후에 있을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부정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나는 알코올에 민감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죄로, 고작 가장 작은 맥주캔 하나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에 열이 오르고 코가 막히고 피로가 몰려오고 하는 각양각색의 통증을 감내해야 했다. 감내하긴 커녕 사실 결국의 결국 백기를 들어 올리고 침대 위로 힘겹게 기어가서 기어이 20분가량 잠을 취해야 했다. 아무튼 잠은 보약이라고 하니까.
그런데 맥주 작은 캔은 정말 정말로 적당한 용량이다. 나같이 술에 약한 사람도 미각이 마비되기 전, 그 아슬아슬한 한계 지점까지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주는 용량. 500ml 이상의 것은 반절하고 조금 더 마시다 보면 알코올 향만 가득한 끈적거리는 탄산수를 마시는 것 같은 불쾌감만 남는 터라. 아마 분명 그 작은 사이즈는 나와 같거나 비슷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만들지 않았을까? 아직 조금 남은 두통으로 뒷목 언저리를 두드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