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는 전 세계적인 불행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재택근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일견 순기능을 가지는 듯하다. 아마 2000년대 초에도 사스가 코로나만큼의 지속성을 가지고 우리를 괴롭혔더라면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노는 토요일, 놀토도 진즉 사라져 버렸겠지. 그랬다면 나는 토요일 오전, 등교 시간에 늦은 줄 알고 소름이 쫙 돋은 상태로 벌떡 일어났다가 학교에 가지 않는 사실을 깨닫고, 아침 시간을 번 기분을 한껏 누리며 친구들과 노래방이라도 갈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스 때문에 노래방은 당연히 영업 금지일 테고, 나는 겨우 그 정도의 불편함으로도 입이 삐죽 튀어나오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과 같은 전 세계구급의 질병 없이도 주 5일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아마 재택근무도 그런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차근차근 정착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는 우리가 주 5일제를 도입하기 위해 거쳤던 사회적 합의 과정과 같은 것을 송두리째 앗아간 걸지도 모른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고 난 후의 재택근무에 대한 합의에까진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간단히 이를 순기능이라고 단언하긴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빠르게 도입된 재택근무로, 나의 업무 환경도 빠르게 바뀌었다. 회사에 원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금방 구축할 수 있었던 건 IT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특수함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덕에 재택근무를 하는 개인적인 노하우도 나름 생겼다. 예컨대 어떤 걸 먹어야 가장 가성비가 좋은가, 간단한 음식 재료는 어디서 사는 게 좋은가, 같은 것들. 결국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니, 환경의 변화에 따른 변곡점은 단연 식문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에 출근할 때는 사내 식당에서 내어주는 균형 잡힌 식단으로 인해 이런 고민은 맘 놓고 접어둘 수 있었다. 더없이 게으르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직원이 일 외의 것에 게으르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복지일 터다.
얼마 전엔 엄마가 삼겹살을 잔뜩 보내줘서, 마치 금궤라도 발견한 심정으로 택배 상자를 열었다. 삼겹살은 식사에 다양한 레퍼토리를 제공하진 않는 식재료인지라, 이걸로 구워 먹기 외에 뭘 할 수 있을까, 잠깐 걱정이 스치긴 했다. 하지만 이내 당장은 삼겹살 구이로 인한 기름이 집안 가득 넘쳐, 거기에 잠겨 죽어도 좋다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며 누리게 된 것도 많다. 예컨대 교통비 절감, 세안 지연 등.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빵빵한 배경 음악을 누리게 된 것이 단연 최고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내 고막에 이어폰을 꽉 물려놓고 있어야 하고 그게 가끔은 참 고역이다. 고막 건강도 내심 걱정된다. 하지만 집에서는 어쨌거나 귀에 별다른 구속구를 걸칠 필요 없이 음악에 대한 갈증을 맘껏 해소할 수 있다. 더군다나 업무 환경도 노트북, 데스크톱으로 자유자재로 결정할 수 있기에 방에 있는 스피커, 거실에 있는 스피커, 원하는 스피커를 맘껏 취사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보헤미안이라도 된 기분이 되어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불가항력에 의해 캐럴을 수도 없이 틀었다. 이 불가항력에 대해서는 선처를 바랄 수밖에. 안 그래도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사는데, 음악마저도 평범한 것을 틀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유튜브로 머라이어 캐리에게 마음껏 수금당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톡 방에서 후배가 말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본의 아니게 자꾸 집중력을 빼앗기는 것 같음."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 했고, 그와 완벽히 반대되는 경험을 했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그 날은 애인이 부쩍 우울했던 날이었다. 애인은 델리스파이스 4집의 동병상련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갑작스럽게도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부산을 떨었고, 애인은 가사가 너무 슬퍼서 라고 대답했다. 노래 가사를 실시간으로 청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나는 여러 가지 의미로 깜짝 놀라고 만다. 애인의 우울함을 함께 공유하여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각별히 신경 써서 가사를 들어본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실효성 측면에서 내 각별함은 그다지 각별하지 못했다. 가사가 덩어리 째 오른쪽 귀로 들어와서 왼쪽 귀로 나가는 경험을 하고 난 후에야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사를 감상할 수 없구나. 가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에겐 당연한 걸 전혀 누리지 못하면서 살고 있었구나 싶었던 난, 그 후로 가사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우선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부터. 귀만으로는 집중이 힘들었던 탓에 인터넷을 뒤져 찾은 가사집들을 마치 시험 기간 커닝 쪽지 보듯이 훔쳐보며 공부하는 심정으로 들었다. 귀에 꽂히는 멜로디 사이의 가사를 캐치해야 했던 나는, 마치 장애물 넘기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노래들은, 몇몇은 가사도 좋았지만, 몇몇은 얼굴을 붉히지 않고는 듣지 못할 문장들로 가득했고, 난 충격받고 말았다.
오래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드루 베리모어는 휴 그랜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멜로디는 육체적 매력이에요. 섹스와 같죠. 하지만 가사는 달라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죠.'
나는 입을 삐죽 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고, 그래서 괜히 가사에 집중하는 척할 뿐이다.
내가 가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쉽게 진단이 가능했다. 아직 세상에 궁금한 게 많던 시절, 그리고 MP3에 음악을 가득 채우고 다니던 시절, 나는 도통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음악에 흠뻑 취해 있었는데, 그게 원인이 된 것이 분명했다. J-POP이었다. 서브컬처에 치킨무처럼 절여져 있던 그 시절의 나에게 한국 음악은 경주 시내를 걸을 때, 혹은 TV 채널을 넘기다가 무심코 튼 음악 채널을 시청할 때에나 듣는 음악이었다. 자막 없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림체에만 집중하게 마련이다.
거기까지 원인 규명을 마쳐도 왠지 혓바늘이라도 돋은 것처럼 뭔가 이물감을 참을 수가 없는데, 그건 바로 이 고민을 안겨준 톡의 주인공, 후배 때문이다. 분명 후배도 나와 결이 같은 과거를 보냈을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된 일일까. 아마 그는 지식이 부족해 가사를 이해 못하는 현상 그 자체를 참지 못한 모양이다. 그 결과 그는 일어 전공으로, 이제는 스스럼없이 일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J-POP의 가사도 손쉽게 이해 가능해서, 일어 가사에도 정신을 쉽게 빼앗기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