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1일 1커밋 #11

by 김디트

이제 조금만 있으면 새해가 다가온다. 33번이나 새로운 해를 봤으니 이제 좀 무던해질 때도 되긴 했다. 방금 전까지, 트위터 등지에서 날아온 새해 관련 알림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문자로 날아온 '해돋이 명소 제한' 관련 문자를 채 확인하지 못했다면 아마 몇 시간 후엔 34살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먹고 말았을 것이다. 다음 날이 되고서야 카카오톡에 새빨갛게 쌓여있는 알림 메시지를 확인할 것이고, 그제야 알아차리겠지. 뭐, 미리 인지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단지 밤 12시가 지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톡이나 여기저기 뿌려대야겠다, 하는 다짐 정도가 하나 추가됐을 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겸양 섞인 연락이 주는 효용은 아마도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 한 두 마디라도 근황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소소한 챙김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끊겼던 정도 다시 새록새록 피어나게 마련이다. 옛날을 복기하길 좋아하는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나불나불, 의미 없는 농담을 섞은 근황을 나눌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 또 금세 왜 이 사람과 연락이 끊겼는가를 확인하는 순간을 지나칠 것이고, 이내 대화방이 하나 둘, 가로등 꺼지듯이 점멸할 것이다.


그렇게 잦아들 연락들을 하나하나 제외하고 나면 좋은 사람들과의 연락만 남는다. 그들과는 이 다가오는 새해를 질 좋은 다과 같은 것처럼 다룬다. 이따금 하던 연락의 일환인데, 때마침 새해인 거다. 벌써부터 몇몇은 새해 인사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너무 진부한 대답은 싫은 터라, 이렇게 답장한다.


"아직 20년인데요?(싸늘) 아직 33살이거든요?"


그럼에도 진부하고 말았구나.


아무튼 난 이렇게 새해 연락 정도의 잔잔한 일들을 계획하며 곧 다가올 21년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몰려오는 파도에 생떼를 써봤자 안 몰려오는 것도 아닐 테니까. 그리고 파도는 자신이 몇 번 철썩거렸는지 일말의 관심도 없다. 다 내 마음의 소치일 뿐인 것을, 같은 어느 스님의 명언 같은 생각을 해보며 이불에 더욱 파고든다.


경주는 맑았다. 새해 기념으로 이월되지 않는 휴가들을 주섬 주섬 주워 모아 4일을 만들었고, 덕분에 20년 마지막 주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결국 비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는데, 그 고민이 귀찮아서 본가로 오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왠지 엄마의 '코로나 때문에 서울 올라가지도 못하겠네' 하는 말이 귀에 밟히기도 하고. 아무튼, 난 그런 정에 기반한 것들에는 유달리 약하다. 경주 터미널에서 강바람에 따귀를 무진장 얻어맞으면서 코를 훌쩍이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엔 반려동물들이 있다. 무려 엄마, 아빠를 합한 수의 두배나 되는 개체들이 모여 살고 있다. 개 둘, 고양이 둘로, 그럼 혹시 암수 쌍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암놈들로만 넷.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본인의 여성 서사를 공유할 수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심리적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끼리 서로 간 위안이 되어주는 것에 대한 비유를 '서로를 핥아준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엄마는 비유가 아니라 진정으로 핥음 받으면서 불합리한 체계로 비롯된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들 각각은 본인만의 공간을 보장받고 있다. 가장 크지만 가장 막내인 흑설이는 1층 마당 한켠, 차마 털을 깎이질 못해서 뾰족한 주둥이만 아니었으면 작은 새끼양으로 착각하고 말았을 백설이는 4층 우리집, 그리고 페인트칠하는 인부 밑에서 서성거리다가 몇 방울 페인트 방울이라도 맞은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 하나와 고등어를 잘 펼쳐서 후드 달린 망토로 다듬은 뒤 입힌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고양이 하나. 공주(이름이다)들, 각각 큰 쭈야, 작은 쭈야라고 불리는 고양이들은 옥상과 옥탑방을 맡고 있다.


나는 간만에 온 터라 잠시나마 날 못 알아보고 멍멍 짖는 흑설이와 백설이의 목소리에 괜히 심술이 나서 눈을 흘기다가도, 이내 팡팡 바닥을 때리면서 부르고야 만다. 뭐, 그런다고 백설이는 손쉽게 곁을 내어 주진 않지만.


아침엔 주둥이를 쪽 빼고 백설이에게 뽀뽀를 요구해 보았다. 그걸 본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웃었다.


"으이구, 니는 안 된다!"


너 정도로는 백설이의 뽀뽀를 받아낼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는 과연 그럴까, 하는 호기로운 마음에 입술을 더 내밀어 보지만, 백설이는 킁킁, 냄새만 맡고는 착착착, 발톱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등을 보이고야 만다. 엄마의 말 틀린 거 하나 없지? 하는 표정을 짓기에 커피를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경주는 덜 춥겠지 하는 예상은 반만 맞아떨어졌다. 경주도 영하 6도로, 서울에 비해선 따뜻하지만, 이게 따뜻한 날씨라고는 때려죽일래도 말할 수가 없다. 오늘은 그래도 어제보단 날이 따뜻해서 해가 지기 전에 흑설이 산책을 나섰다. 생긴 것 답지 않게 유순한 아이지만, 행인들에게는 압도적인 위압감일 것이 뻔하기에 주둥이에 입마개를 씌워야 했는데, 흑설이는 물약에 잘 푼 가루약을 코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획획 저으면서 반항했다. 왼쪽으로 들이밀면 오른쪽, 오른쪽으로 들이밀면 왼쪽. 몸을 빼고 달아나지 않는다는 점이 재밌다. 흑설이는 알고 있는 거다. 입마개를 안 하면, 목줄을 안 하면 산책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강변을 찬찬히 거닐다가 냅다 드러눕길래 풀밭에 같이 털썩 내려앉아서 가만히 까만 얼굴 속 까만 눈을 바라본다. 흑설이는 괜히 부끄러운지 내 신발에 몸을 부빈다. 아니, 입마개가 갑갑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문득 '개팔자가 상팔자다'라는 속담을 생각한다. 정말 넌 전생에 인간이었던 것 아니냐? 하지만 역시 상팔자 같진 않네. 나는 입마개랑 목줄 없이도 산책할 수 있는데, 넌 못 하잖아.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던 나는 왠지 조금 슬펐고, 그래서 흑설이 귀에 속삭인다. 너희도 인간이고 싶을 때가 있어? 다시 태어나면 인간이었다 싶을 때가 있어? 그러고 싶어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엄마도, 나도, 조금은 위안이 될 텐데.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햇빛이 산모퉁이로 숨어 드니, 강바람은 더 차가워졌고, 때문에 난 얼른 몸을 일으켜 흑설이와 산책을 마쳤다.


2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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