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가다 잊혀진 예전 것을 다시 한번 꺼내 보는 건 자못 생경한 일이다. 분명히 내가 지나온 것일 텐데, 왜 이리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얼마 전, 지금까지 쌓아온 공 CD들을 정리하다가 애니메이션 뭉치들을 발견했다. 아, 내가 이런 애니메이션도 봤었지, 하면서도 도대체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유튜브에서 오프닝 엔딩 따위를 찾아서 들어보니 왠지 아련한 마음이 들어서 과연, 하는 심정으로 CD들을 재생해 보았다. 결과적으로는 초등학교 때 적은 일기를 들춰 보는 느낌만 실컷 받고 끝나버렸지만. 연달아 하품을 하면서 스킵, 스킵을 누르는 시간이 내용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길었으니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엔딩은 좋았다. 음악은 왠지 멜로디 만으로도 그 시절을 불러올 수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는 박화요비 님의 Lie라는 노래에 꽂혔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다달았고, 아 맞아, 이런 노래가 있었었지 했더랬다. 전주만 들었을 뿐인데 어느새 과거가 소환되었고, 나는 홀린 듯 영상 위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해서 '연속 재생'을 설정해 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CD로까지 보관했겠는가 싶은 마음이다가도 이내 손사래를 치고 만다. 어떤 점에 끌렸던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나, 감정적으로는 왠지 그 끌림들이 온데간데없다. 이를테면 동거하는 선배가 설거지를 미루고 다음날에서야 '너무 피곤해서 못했다.'라고 핑계를 시도하면 머리로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으로는 '아니, 그게 말이 돼?' 하고 마는 것과 비슷하달까. 애니메이션은 그런 이유로 종료, CD를 트레이에서 꺼내버리고 만다.
일관적인 취향이라는 건 단지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취향에 관해서는 소나무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냥 강박 관념이다. 게임 관련해서 특히 그런데, 왜냐하면 내가 게임 프로그래머가 된 결정적인 이유가 그 취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수립된 바로 그 게임 취향 때문에 게임 제작자가 되고자 했는데, 지금 와서 그를 부정하면 결과적으론 현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죄책감이 들었던 거다. 그런 이유로 어린 시절 특별히 좋아했던 파랜드 택틱스를 위시한 SRPG 장르에 대해서는 정말 복합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SRPG류 게임을 피곤해한다. 어휴, 피곤해, 발 끝으로 휙 밀어버린다.
영화도 그렇다. 옛날에는 강렬한 재미, 시각적인 요소들에 끌렸고, 그런 게 영화의 중차대한 목적이라고 생각했었더라면, 이제는 완전히 그와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 아니, 미장센과 은유적인 표현들을 빼놓고 어떻게 영화를 논하겠다는 건지. 어린 나에게 제대로 꼰대질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어린 나라도 나니까, 나한테 하는 몹쓸 짓은 괜찮지 않을까.
옛날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 그 대비는 더욱 강렬해진다. '기담'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옛날에는 '졸리고 별로 안 무서운 영화'로 한 방에 정리 가능했지만, 이제는 좀 더 복합적인 요소, 심미적 장치들에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되는 식으로. 예를 들면 자웅동체인 달팽이가 영화의 한 요소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데, 이는 주인공들과 귀신이 한 몸을 공유하거나 영향을 끼치는 서사의 은유일까, 하는 식으로 여러모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 눈이 가게 되었다. 취향에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취향에 높고 낮음은 없다고 하는데, 없다고는 하는데. 역시 마음속 옛날의 나에게 제대로 꼰대질을 해버리고 만다.
취향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커피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커피는 삶의 굴곡이라도 되는 양, 그 이미지가 참 많이도 변했다. '어른들만 마실 수 있는 음료'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음료',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음료' 순으로 차근차근, 하지만 확실하게 변화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꼭 그렇다. 재미있는 점은 핸드폰의 역사도 꼭 이렇게 매칭 가능하다는 점. '핸드폰이 없는 삶', '핸드폰이 있는 삶', '스마트폰이 된 삶' 순으로. 30년 만에 강산만 변한 게 아니라 그냥 송두리째 전부 바뀐 게 아닐까.
지금 동거하는 학교 선배는 나보다 4살이 많고, 그래서 나보다 사회생활도 일찍 시작했다. 갑자기 서울의 어느 유명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시절엔 사실 크게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 그렇구나.' 하는 정도의 심정이었다. 아직 부산에 있는 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였다. 그러다 어쩌다 서울에 한 번 들렀던 때, 문득 이 선배의 생각이 났고, 그래서 선배가 일한다는 홍대의 카페에 들렀다.
"자, 마셔봐."
선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에게 커피를 대접했다. 그때는 핸드 드립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때, 아니 커피라는 음료를 전혀 즐기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맛이라고는 탄 맛뿐이었고, 혀를 내밀면서 '으, 맛없어'라고 할 뻔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데면 데면한 사이에 대놓고 그런 식의 리액션을 취할 순 없었고, '오,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누가 봐도 찡그린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근데, 진짜 왜 마시는 거예요? 커피? 정말 맛이 다른가?"
"응, 달라."
"그걸 진짜 구분 가능해요?"
나는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인이 우유나 생크림 등이 첨가되지 않은 커피를 마실 때 짓는 표정과 비슷했다. 난 지금에 와서는 전혀 반대 뜻의 미심쩍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커피가 탄 맛밖에 안 난다고? 참,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모르는 발언이다.
그렇게 유동적으로 변화한 취향 덕에 이제는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신다. 캡슐 커피, 드립 커피, 모카 포트, 종류를 따질 필요도 없다. 아니, 사실 종류는 따진다. 선택지가 있다면 말이지만. 이제는 중독 수준이 되어버려서 아침에는 반드시 커피와 함께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간혹 커피, 커피, 하며 기름이 바닥나가는 자동차처럼 느릿느릿, 덜덜거리면 애인은'커피 좀 자제해'라고 눈썹을 역 시옷자 모양으로 만들며 마구 혼내곤 한다. 커피를 내리다가도 불현듯 애인의 그 반응이 떠오르면 조금 죄책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면, 거실 소파에 누워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 불똥이 튄다.
"선배 때문에 저, 커피 중독됐잖아요!"
선배는 짐짓 억울한 표정과 재미있다는 표정을 적절히 섞은 표정으로 대응한다.
간혹 그때, 선배가 일하던 카페의 바에 앉아서 더치커피 머신이나 일렬로 서 있는 커피 포트, 드리퍼, 서버 따위가 과학 실험실처럼 늘어서 있는 걸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마치 신비로운 연금술의 재현이라도 직관하는 것처럼 물끄러미 선배가 칼리타로 커피를 추출하는 걸 지켜보던 때, 이런 희한하고 신비로운 것들이 내 일상과 취향에 직격타를 선사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