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13
본가에서 서울 집으로 도착한 순간 하품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이 새어 나왔다. 긴 연휴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일까,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게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오전 11시 40분 버스를 끊었는데, 어젯밤, 아니 아침만 해도 매우 느긋하게, 아침의 여유와 커피, 이어서 다도까지 즐기고 나올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우리 집에서 버스 터미널까지는 자동차로 10분 남짓 거리였던 걸 믿었던 이유도 있다. 원래 학교가 가까운 학생이 더 지각을 많이 하는 법이라곤 하지만. 그렇지만 원래 계획이었다면, 아침 햇살이 선처럼 몇 줄기 내리쬐고, 노릇노릇한 햇살과 그림자로 노곤 노곤하게 된 나는 가만히 엄마가 내려주는 차를 마신다. 그런 그림이었을 텐데.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하니 10시가량이었다. 어제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대충 해 둔 참이었고, 그래서 마음은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헛둘헛둘 스트레칭도 몇 번 해 주고, 잠깐 누워서 핸드폰도 만지작거리다가 이제 일어나 볼까, 시간도 수도관을 통해 배급된다면, 나는 수도꼭지를 한도까지 돌려놓은 셈이다.
나가니 엄마가 밥을 준비해주고 있었다. 11시 40분은 오히려 점심시간에 가깝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연거푸 왜 이렇게 아침 일찍 돌아가냐고,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사실 아까 전 언급한 코스, '아침의 여유와 커피, 이어서 다도'라는 것은 나의 독단적인 계획이 아니라 엄마의 계획에 가까웠다. 엄마의 느릿한 요리 준비에도 아침 햇살의 여유가 살몃 깃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야, 아직 10시였으니까,라고 생각했더랬다. 뒹굴거린 시간 같은 건 그냥 땅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여겼나 보다.
나무를 통으로 반으로 갈라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반들반들한 우레탄 바니쉬가 두껍게 발라진 거실 테이블을 대충 치워서 공간을 만들고 엄마가 차린 짜글이, 계란말이, 스팸 구이, 김치, 현미 보리밥을 차례차례 얹었다. 집에는 숟가락도 젓가락도 모두 제각각 모양이 달랐는데 그 모든 수저들이 내가 지나온 과거 한편 한편을 축약해둔 것처럼 익숙했다.
식사는 빠르게 해치웠다. 공교롭게도 식사를 하는 동안 내 시선 위로 시계가 위치하고 있었고, 째깍째깍 초시계가 오른 방향으로 놀리듯 움직이는 게 굉장히 신경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씻고, 커피 마시고, 엄마의 다도까지 누리려면 식사는 몇 시까지 마쳐야 하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내 손놀림이 바빠지는 것도 모른 채 엄마는 느긋했다. 그야, 시계가 등 뒤에 있었다면 나도 그럴 것이다.
으아아아, 치카치카, 보글보글 씻고 나와서 위이잉- 눈썹 휘날리게 머리를 말렸다. 그리고 나오니 11시 10분. 마치 살금살금 기어들어온 시간 도둑이라도 있었던가. 왠지 모모에게 강렬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고, 그제야 엄마도 시간을 인지했는지, 커피는 이미 내려져서 거실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엄마는 약간 초조한 눈빛으로 나와 커피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빨리 마셔라. 차는 마실 수 있겠나."
"어휴, 못 마시겠네."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제저녁 다도를 즐기고 남은 찻잎을 한번 더 우려서 이거라도 한번 더 맛보고 가라고 권한다. 나는 커피도 후루룩, 다시 우린 차도 호로록, 입 안에 털어 넣고 서둘러 패딩 속으로, 백팩 스트랩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11시 35분. 정말 아슬아슬했다. 나는 보조석의 차 문을 열고 나가면서 차가운 공기에 몸을 으슬으슬 떨 틈도 없이 엄마의 차가 떠나는 것을 잠깐 지켜본 뒤 서둘러 뒤뚱뒤뚱 터미널 안으로 뛰듯이 걸어가야 했다.
언제부턴가 늘 이런 마음이다. 곧 터미널에서 버스가 출발하기라도 할 것만 같은 마음. 버스에 몸을 싣고 안전벨트를 찰칵 잠그고도 그다지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일에 아토피라도 있는 것처럼 괜히 근질거린다. 버스는 우등 버스로 좌석이 널찍했고, 온기보단 한기가 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5명 남짓. 버스 기사 아저씨는 말수가 많은 타입이었다. 버스를 휘휘 둘러보고 가로지르며 티켓을 확인했다. 그러며 쉴 새 없이 코로나 때문에 일이 없고, 기름값도 남지 않으며, 이번 주는 몇 번 쉬었고 하는 등 불평을 했다. 가장 앞에 있던 연세가 있으신 아저씨는 연세와 품격을 담아서 '네, 그렇군요, 그러셨구나.' 하는 식으로 말을 받아줬고, 그래서 운전을 시작하고도 얼마간 그 불평이 이어졌다.
나는 패딩에 머리를 푹 묻고는 다리를 달달 떨었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갤럭시 탭, 이북 리더, 블루투스 게임패드는 서울에서 경주로 올 때 챙겨 와 놓고,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그래서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세 가지를 잘 활용했을까.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는 게임을 하나라도 엔딩 볼 수 있었을까?
또 쓸데없는 짐을 가득 들고 왔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고,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도 다시 볼까, 싶어 졌다. 버스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고 슬슬 가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22. 01.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