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138
오늘도 결국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나는 또 다시 몰려오는 두통의 원인을 되짚다가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바깥 공기를 조금도 맡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하다. 너무나 너무나 편리해서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늘어만 간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물건이 구입되고 생필품이 마구 배달되어 온다. 나의 노동이 돈으로 환산되어 누군가의 노동이 되는 것. 그 과정을 축약시키는 것이 '스마트함'이라면 이 세상은 너무나도 심각하게 스마트해진 건 아닐까. 뭐 그런 별볼일 없는 생각을 하면서 의자에, 쇼파에 끊임없이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것, 하루종일 앉아있기만 하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나의 몸에 더 악영향을 미칠까.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악영향이다.
가끔은 별 일 없이도 밖으로 잘만 나갔다. 옛날보다는 빈도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왠지 나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걸으면 발바닥의 혈이 자극되어서 생각이 촉진된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하고 싶을 때 주로 나가고 싶어졌으니까. 하지만 점차 산책의 빈도가 줄어드는 건 역시 문제였다. 원인은 아마도 생각하는 법까지 '스마트'해진 이유일 것이다. 인터넷 요금, 핸드폰 요금을 치르고 생각하는 일마저 대행을 맡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튜브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본다. 아마 터미네이터의 미래세계도 끊임없이 자신의 것들을 기계에게 대행시키다가 그 꼴이 난 것일테지.
그런 이유로 요즘의 산책은 실용적인 이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왠지 영 끌리지 않았다. 잠깐 식사거리라도,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다못해 휴지라도 사야 할 일이 있어야 그제야 적당한 옷을 몸에 걸치고, 이어폰과 지갑을 주머니 속에 단단히 챙겨넣고 전장이라도 나가는 모양새로 나서는 것이다. 전장이라곤 했지만, 아마 강제 징용을 당해서 전의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그런 병사의 행색이다.
일단 나가면 반쯤은 성공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하나 하나 비교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는 걷는 걸 즐거워하는 축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두세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걸을 수 있다. 우선적으로 실용적인 이유를 실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팽팽 돌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휴지는 부피가 크니까 돌아올 때 집 근처에서 사도록 하고, 먹거리는 조금 멀더라도 적당히 산책을 겸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마트로 가서 사도록 해야겠다. 가격대를 보고 적당하면 마트에서 함께 사야지. 알고리즘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최적화 한다. 최적화라 해봤자 겨우 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된 거라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을때가 많다. 마트에서 생각보다 많이 사서 손이 모자라 결국 휴지를 사지 못하고 돌아간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래도 일단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으면 이제는 정말 온전히 산책 타임이었다. 우리 집 주변으로는 걸을만한 곳이 꽤 여러 곳이다. 청계천 쪽으로 가도 되고 서울역 쪽으로 향하는 하늘 공원을 걸어도 된다. 사실 예로 든 상황에서는 목적지가 서울역 쪽에 있는 마트로 결정되어 있으니 꼼짝없이 하늘 공원을 택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즉 책을 사러 간다는 목적, 빵을 사러 간다는 목적,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간다는 목적 등 좀 더 보편적이고 자주 택하는 목적으로 나왔을 때는 자주 청계천 쪽을 선택한다. 청계천은 은근한 조명 덕에 생각에 빠지기도 좋은 곳이었지만, 애인과도 꽤 많은 역사를 쌓아올린 곳이었기에 옛날을 추억하기도 썩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산책의 경로까지 정리하고 나면 이제 정말 머리를 비워도 된다. 멍하니, 발길이 닿는대로, 좋을대로 서성거리면 그만인 것이다. 핸드폰 같은 스마트한 녀석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넣고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정말 많은 산책의 휴식처들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는 을지로에 있던 아크앤북스. 청계천 근처만 가면 반드시 한 번은 들르던 곳이었는데. 사라지는 장소들 만큼 나의 산책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코로나는 많은 것들을 더욱 스마트하게 만들어 줬으면서, 나의 산책은 끊임없이 우둔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