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나와서 문득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자연(공원을 자연이라고 퉁치는 것은 너무나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을 찾아가는 이유는 뭘까.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 이런 자연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정말 보잘것없는 생물이라는 걸 깨닫고 겸허해지기 위해서, 바로 떠오르는 건 이 정도였다. 하지만 고작 이 작은 공원의 풍경에서 그 감정들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의 생각이 든다. 심지어 자연마저 편의시설을 증설해서 좀 더 쉽게 즐기도록 만드는 인간. 하다못해 자연 풍광까지 착취하는 인간. 뭐 이런 식이다. 역시 공원을 자연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동물원을 밀림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무튼 돌아와서. 자연을 즐긴다는 건 정확히 뭘 뜻하는 걸까. 상쾌한 기분, 일탈감, 해방감,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서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때, 대학교 선배와 함께 매달 산을 하나씩 정복해 나간 적이 있었다. 앞의 감정들에 더해서 정복감, 완수했다는 뿌듯함, 뻘뻘 흘린 땀만큼의 개운함. 평일 간 쌓였던 묵은 감정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감정을 채우는 좋은 경험이었다. 뭐 그런 게 자연을 찾는 이유일까. 인간관계 사이에서 생겨난 너저분한 감정들을 쏟아붓고 개운해지는 것.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일 것 같진 않았다. 겨우 공원 산책 같은 것으로는 등산만큼의 급진적인 감정 개혁이 발발하지 않는다.
오래 묵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면 가끔 피사체가 없는, 그저 풍경만이 가득 메우고 있는 사진들을 발견한다. 사실 피사체가 없는 게 아니라 공간 그 자체가 피사체인 사진이다.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이를테면 이런 사진들이다. 깜깜한 밤, 가로수들이 그늘을 만들어서 밤보다 어두운 길을 만들고 있는 사진. 대학교 다닐 때쯤, 경주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타고 홀로 보문단지로 산책 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걸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어둡지만 시원하고, 그러면서도 적막이 감도는 그때의 보문단지가 희미하게 냄새를 풍기며 나타난다. 그 사진은 그 순간의 내 내면을 촬영한 것이었다. 내가 그 자연을 경험하면서 어떤 상상을 했는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지. 뭐 그런 것들이 비록 세부내용은 뭉뚱그려진 채였지만 꽤 정확히 재현되어 있었다. 무척 적막하지만 소란스러운 장면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자연을 찾는 수많은 이유 중 나만의 이유가 차차 정리되어갔다. 아마 자연이란 빈 도화지 같은 게 아닐까. 자연(공원이지만) 사이를 통과하며 생겨나는 수많은 상상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순백의 도화지. 지금 내가 생각하고 떠올리고 그리고 그리워하는 그 모든 것들을 채우고 채워도 마치 끊임없이 소금을 만드는 맷돌처럼 자연이라는 도화지는 결코 가득 메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비록 같은 장소일지라도 다시 찾고 또다시 찾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가끔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렸으면 스크랩하듯 사진을 찍는 것이다. 다음에 다시 찾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엔 뭐 그런 잡생각을 이 공원에 그려 넣었다. 그런 이야기였다.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