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북적거렸다. 그렇다고 해서 한창때의 명동 거리가 그려질 정도로 숨 막히는 그런 북적거림은 아니고, 굳이 비유하자면 적당한 평판의 식당 평일 점심쯤의 모습이었다. 숨 돌릴 틈 없이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우고 손님을 응대하고 하다가 어느 순간 딱 발길이 끊기기도 하고 하는. 뭐, 아무래도 그럴 시즌이었다. 곧 명절의 핵, 명절의 꽃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엄마는 가끔 투덜거리듯, 하지만 결코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듯 굉장히 사소하게, 굉장히 지나가는 뉘앙스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는 일 년에 두 번밖에 안 오면서..' 설날과 추석을 의미했다. 그럴 때마다 짐짓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기억을 뒤척여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 말의 진실성에만 힘이 더해갈 뿐이었다. 서울과 경주는 너무나 멀고 멀었고, 평일에 대한 보상심리는 그 먼 거리를 감내할 일말의 여지마저 꺾어놓았다. 그런 이유로 고향은 명절이 아니면 장소가 아니라 어떤 개념에 불과했다. 이건 제법 보편적인 일인 모양인지 친구들의 첫마디도 다들 '이번엔 경주 가느냐'는 식이었다.
추석도, 고향으로 가는지의 귀추도 중요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화두가 유난히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 화두란 백신 접종 여부. 우리가 모이기 위해서는 경주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그 이상의 허들, 4인 초과 집합 금지라는 법적 근거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했다. 그나저나 지방은 4인까지 모일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의 2인 기준에 익숙해진 난 4인이라는 말에 와, 그렇게나 모여도 괜찮은 건가 하는 심정이었다. 4명 모이는 게 그렇게나 의 일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사는 건 그리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백신 접종으로 넘어갔다. 백신 접종 완료자는 그 카운팅에서 열외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은 백신을 맞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내 주변에 백신에 대한 두려움을 표명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엔 상당히 놀랐다. 코로나 감염보다 백신을 위험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존재했다. 더군다나 모더 나인데. 얀센을 맞은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그 공포심이 왜 6명 이상이 모일 이 추석 모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지. 평상시의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은 어떻게 잠재우는 것인지. 여러 가지 것들이 궁금했지만 '건너 아는 여대생이 죽었다더라', '요새 몸이 너무 안 좋다' 하는, 친구 나름대로는 실존적이라 생각하는 이슈들 앞에서, 정말 오랜만에 연락하는 주제에 날카롭게 이를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다.
그 친구의 백신 불신에 잠깐 채팅창이 울렁였으나 이내 1차만 접종 완료한 자영업자 친구가 한방에 끝나는 얀센에 대한 부러움을 표명하면서 주제는 옮겨갔다. 나는 자영업자는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직장인은 백신 휴가가 더 많이 나오는 두 방짜리 백신이 좋다고 대꾸했고, 그 친구는 '역시 자영업자만 죽어난다'며 씁쓸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