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프로젝트 직시하기

1일 1커밋 #144

by 김디트

인상을 잔뜩 쓰면서 머리를 헝클였다. 당장이라도 그냥 침대에 엎어져서 잠들고 싶었다. 아마 자살이란 건 이런 심정이 어마무시하게 큰 사람들이 택하는 일일 테지. 대체 얼마나 큰 시름을 안고 있어야 영원히 잠드는 걸 염원하게 되는 걸까. 나는 눈을 감더라도 자고 일어난 후엔 지금 머리에 잔뜩 끼인 이 먹구름이 걷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눈을 뜰 거라는 걸 상정한 도피였다. 그런 상정조차 포기하게 만들 그런 큰 상처와 시름이라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고, 송구스러웠다. 침대에 눕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요새들어 유독 이런 일이 잦았다. 해야 할 일들은 내 뒤로 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서 은근히 나를 채근한다. 이를 그냥 앞서 있는 순서대로 하나하나 처리한다. 엄청나게 질린, 염세적인 표정으로 기계처럼. 물론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순서대로 하나하나 끝내는 것에, 그 달성감에 어떤 희열감까지 건져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보이지 않는 할 일들의 대기열에 기가 질리게 되는 것이다. 가장 기가 질리는 부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랫동안 해오던 내 개인 코딩이 요즘 들어 지지부진했다. 사실 지지부진했던 건 꽤 오래전부터였고, 이제야 그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방향으로 애를 써보았다. 이를테면 해야 할 일들을 몇 가지 갈래로 쪼개서 체계화한다거나, 한 가지 일도 세부적인 부분까지 쭉 나열해서 순서대로 처리해 본다거나, 그조차 의욕을 북돋지 못할 때면 다른 게임들을 조금 만지작거리면서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의 완성본을 상상해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즐겁지 않았다. 그래, 4년 이상을 공들인 이 코드 덩어리를 만지는 게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심지어 이렇게 활자화하는 것은 굉장히 큰 노력이 필요했다. 거기에 들어간 시간과 용력을 거세하는 심정이었으므로.


하지만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가장 큰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인정할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저번 주말의 일이었다. 나는 가용시간만 생기면 개인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걸 회피함으로써 발생하는 죄책감, 양 쪽에게 싸대기를 맞곤 한다. 저번 주말도 그랬다. 난 수차례 고통스러워하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했다. 이 주말이 특별했던 건 평소에는 다다르지 않던 생각까지 폭주해서 가닿았다는 점에 있었다. 정말로 믿고 싶지 않은 생각이 부표처럼 스르륵 떠올랐다.


'나는 이제 게임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4년 동안 만져온 프로젝트를 싫어하는 것마저 인정하기 힘든 사람이,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문장을 수긍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불가능함을 입증하기 위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발버둥 쳤다. 인터넷에 '좋아하는 일'이라고 치고 나와 같은 시련에 빠진 사람은 없나 두리번거렸고, 내부에서 침잠하지 않게 밖, 독립서점으로 나가서도 일에 관한 책들을 우선적으로 꼼꼼히 훑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그 답 없는 질문에 몰두하다가, 몰두하다가, 몰두했다. 그러다가, 그날 밤, 겨우 힘내서 한걸음 물러섰다. 게임을 싫어하는 나, 의 한 발자국 뒤에 있던 뷰. 그건 바로 내 프로젝트가, 그리고 거기에 엄청나게 질린 나의 모습이었다. 그래, 게임을 싫어하는 나보다는 좀 더 허들이 낮은 나. 마 이 정도라면.. 하는 심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잊을 수 있다고 했던가 하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주말엔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성했다. 오랫동안 만지지 않은 유니티의 장 최신 LTS 버전을 새로 깔고 조금 바뀌었지만 친숙한 인터페이스를 만지면서 새롭고도 간단한 게임을 구상해 나갔다.


정말 다행히도 재미가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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