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자기 파괴를 바랐던적이 있다

1일 1커밋 #143

by 김디트

문득 샤워를 하다 보니 목욕탕이 간절해졌다. 뜨끈한 물속으로 발 끝부터 목까지 푹 담그면 땀구멍이 화들짝 놀라는 느낌이 선명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여름이 지나긴 지났나 보다. 더위를 겨우 뚫고 나온 후에 생각나는 게 더위라니, 좀 아이러니 하긴 하다. 하지만 미묘한 피로감이 마치 사냥에 성공한 사자의 발처럼 묵직하게 얹어져 있으면 그런 게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면 좀 나아질 텐데. 하지만 욕조도 뭣도 없는 이 작고 음습한 집구석에서는 방법이 없다. 요즘 시국에는 바깥이라고 또 신통한 방법이 더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목욕탕을 생각하면 어렸던 나, 그리고 친구들이 떠오른다. 친구들과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목욕탕에 갔었다. '시원하다'는 말도, 해묵은 때가 쌓이면 몸이 어떻게 거칠어지는지도 전혀 알 수 없는 나이였다. 경험이 깊어져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데, 목욕도 그런 것들 중 한 가지였다. 우리들이 목욕탕을 간 이유는 단 하나, 냉탕의 존재 때문이었다. 수영장엘 본격적으로 갈 돈도, 수영복도, 새로움을 쉬이 받아들일 단단함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물이라면 사족을 못 썼는데, 아마도 죽음이란 그런 '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다는 말이 있다. 어린 우리에게는 목욕탕이 딱 그 문장을 물질화 한 공간이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온탕이 있어야 냉탕이 있었다. 발 끝부터 머리까지 서서히 익어가는 느낌을 즐기려고 노력하며 온탕과 사우나를 왕복했다. 그 나이에 그것들을 사랑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감내했다. 바로 그것이 어른이 되는 지름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토록 간절하게 나 자신의 신체의 파괴를 바랐다는 점이 지금에 와서는 믿기질 않는다만. 그런 자기 파괴적인 바람을 꾹 참아내며 온탕을 버텼다. 어떨 때는 어른을 흉내 내는 걸 결국 포기하고 작은 대야체 찬물을 가득 퍼서 온탕 테두리, 혹은 사우나 바닥에 두고 고양이 세수로 겨우 버텨내는 일도 있었지만.


때를 벗기러 나가는 기준은 손이 쪼글쪼글 해졌느냐였다. 나는 쉴 새 없이 손바닥을 확인하고 번번이 좌절했다. 그러면서도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가서 때를 밀어보려는 다른 친구를 짐짓 어른스러운 척 나무라곤 했다. 그 정도밖에 안 있었는데 때가 밀리겠어? 좀 더 들어와 있어. 이런 식으로. 누구보다 나가고 싶어 하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나가고 싶진 않았다. 어린 날의 오기라고 하기엔, 지금도 이런 면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나도 다행히도 아직 성장 중인 것이다.


결국 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때를 벗기고 서로 간에 연결된 기차처럼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난 후,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리면서 모든 불행의 의식이 끝났음을 선언하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냉탕으로 달려가곤 했다. 적당히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냉탕의 물로 가슴팍부터 천천히 적신 후 '으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냉탕 속으로 푹 빠졌다. 혹은 그럴 틈도 없이 친구의 손에 떠밀려서 냉탕에 강제로 입수하거나. 둘 다 소리를 지르는 건 같았다. 차가운 물이 가득 차 있는 곳일 뿐인데 우리는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고, 때수건을 던졌고, 개헤엄을 쳤다. 그 시절의 어른들은 우리의 그 만행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던 걸까. 아마 버티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목욕탕 관리 아저씨가 자주 우리에게 경고하러 들어왔었으니까. 그럴 때면 우리는 소리만 조금 낮춰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목욕 후 몸과 머리를 말리고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으로 밤공기를 맞으며 목욕탕 건물에 있는 빵집에서 고로케를 사 먹는 건 하나의 의식이었다. 우리는 그 고로케를 생각하며 몸을 닦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에 정말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빗. 대체 빗으로 머리를 빗는 건 왜 해야 하는 걸까? 머리가 촉촉이 젖은 꼬마 아이였던 나는 빗으로 아직 채 덜 마른 머리에 괭이로 긁은 것처럼 머리카락 사잇길을 내며 정말 진심으로 그걸 궁금해했다. 머리를 조금 털어내기만 해도 머리카락은 윤기가 있었고, 보송보송했고, 엉킬 일이 없었던 시절의 궁금증이었다. 그런 걸 궁금해했던 나는 이제는 탈모가 오는 건 아닐까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그 시절의 내가 온탕을 견뎌내며 그토록 바랬던 자기 파괴의 전모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키친과 두 사람의 night d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