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 맥락과 관계
Compiling 7.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직 분가를 하지 않았을 시절. 분명히 내가 어딘가에 잘 보관했다고 생각한 물건이 사라져 있는 상황이 왕왕 있었다. 누가 어디로 옮겼을까. 썼으면 원래 자리에 잘 놔둬야 하는 거 아니야? 동생인가? 아니면 방을 정리하던 중 엄마가? 당혹스러움이 분노로 변하는 과정은 점진적이면서 격정적이다.
그리고 한참 분개하며 방을 이리저리 들쑤시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물건이 등장하는 상황. 그곳에 그 물건이 있는 이유가 파노라마처럼 촤르륵 스쳐 지나가고 그 범인이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속을 가득 불태우던 그 감정은 물에 녹는 솜사탕처럼 사르르르 녹아버리는 바로 그런 상황.
상황 자체는 변한 것이 없지만 마음속은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즉, 상황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마치 '가족'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맥락이 되는 것처럼.
영화는 상류층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을 잔잔하게 나열하면서 시작한다. 그 가족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케이타의 아버지, 료타는 얼핏 무척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무심하게 그만둔 직원에게까지 신경을 써줄 여유는 없다고 대답할 정도로 철저하다. 그 합리적 사고 안에는 비합리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의 기준에서 가족이란 그저 고리타분하고 전통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런 요소들은 이미지일 뿐이다. 그가 조성하는 건물의 조경 속 가족 미니어처에 '강아지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정도의 부가적인 요소이다.
그의 그런 이성, 합리주의적 모습은 가족과 채 어우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료타는 그 겉돎을 애써 섞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회사, 외부로 도피한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섞이리라 믿는 것처럼. 아마도 그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단어, '피'를 믿었던 것이다. 고리타분한 전통적 가치를 비합리적으로 치부하는 합리의 외피 속에도 '피'와 같은 비합리적인 요소가 관습처럼 내재되어 있다. 이런 이중적인 잣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료타의 가족을 관통한다.
병원이 뒤늦게 아이가 바뀌었음을 알려오고, 그와 함께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케이타를 전혀 다른 맥락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의 합리적인 기준을 벗어나는 그 모든 것들은 '피'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는 '역시 그랬던 것이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자동차 창문을 쿵 소리 나게 때린다.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 두 가족은 주말 간 아이들을 바꿔 생활해 보기로 한다. 병원 측의 '이런 경우 100% 교환을 선택한다'는 말을 일단 따라보는 것이다.
료타는 미도리에게 '안심하라'라고 말하고, 케이타에게 '미션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 된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으리라. 하지만 그의 이중성, 전통적 가치는 끝내 그 이성과 합리를 파괴한다. 그가 택하는 합리적인 방법, 예컨대 류세이와 케이타를 모두 거두어들이겠다는 방법은 일견 좋은 방법으로 보이지만 합리적임과 전통적임을 억지로 섞은 음식물 쓰레기나 다름없다.
오히려 '가족'과 '피'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전통을 깨부수고 이성과 합리로 나아가는 것은 료타의 아내, 미도리 쪽이다. 그는 유다이네 가족과 서서히 결합되어 간다. 케이타뿐 아니라 그들의 실제 자녀인 류세이에게도 점차 애정을 갖는다. 그 결합이 낯설어 '케이타를 배신하는 느낌'이 들지만, 그건 보수와 진보의 결합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질감일 뿐이다.
두 가족의 결합에 방해가 되는 것은 결국 합리적이라 자신했던 료타뿐이었다. 료타는 케이타가 남기고 간 카네이션 줄기, 카메라 속 자신의 사진을 보며 '가족' 외부로 겉돌던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가족'과 '피'를 분리해 낼 수 있게 된다. 그저 개념이던 '가족'은 그 순간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입체적인 단어가 된다.
영화 중, 유다이는 케이타에게 이렇게 말한다.
'스파이더맨 있잖아. 거미인 거 알아?'
케이타는 고개를 젓는다. 그에게는 스파이더맨이 거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