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긴의 탈피(1)

by 김디트

마차였다. 세부적인 장식은 상당히 생략되어,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투박하다는 평가를 받을 법한 생김새. 번화가의 골목 어귀에서 물과 굉음을 함께 튀기며 운행할 법한 그런 평범함을 갖춘 마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하다는 평가를 섣부르게 내리기에는 조심스러웠다.


레휘는 울창한 숲의 그늘이 만들어내는 음지의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눈을 살짝 찌푸렸다. 원시림에 가까운 숲은 그 자체로 어떤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무들은 서로 간의 영역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온갖 포즈로 서로를 위협하듯 성장했고, 그 아래로는 이끼와 이름 모를 동물들의 배설물, 작은 식물들 같은 것들이 지엽적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 모든 풍경과 이 마차는 어우러지지 않았다. 마차는 이 숲에서 마치 혼자만의 세계를 공고히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바로 그 이유로 평범하다는 평가를 내리기 어려웠다.


허나 마차 역시 나름대로 풍경과 어우러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긴 했다.


말이 매여져 있던 흔적만 남아있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마차의 선두 부분과, 언제 나가떨어졌는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격렬한 흔적만을 바닥에 길게 남기고 있을 뿐인, 분명히 바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빗자루처럼 삐죽빼죽 갈라진 왼쪽 바퀴축이 바로 그 증거였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차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꽤 멋진 글이 될 수도 있겠는걸. 방랑자는, 한편으로는 음유시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 술집에서 이야기를 자아내는 실력이 공짜 술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니까. 레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조금 옮겼다.


어두워서 습기가 잘 빠지지 않는 깊은 숲의 바닥은 굉장히 질었다. 덕분에 반파된 마차가 남긴 바닥의 흔적들은 굉장히 역동적이었다. 그만큼 많은 단서들을 품고 있기도 했다.


예컨대, 여기 부서져서 나뒹굴고 있는 커다란, 하지만 꽤 오랫동안 썩어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쓰러진 이 고목은 부서진 부위가 신선한 것으로 보아, 마차와의 추돌로 인해 바닥의 찰기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이 썩은 고목은 원래 어디 있었을까? 바로 저기군. 저기서 충돌하며 마차는 크게 한 번 휘청. 바닥을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으며 굴러온 고목은 이렇게, 바닥에 완전히 맞닿고 만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추론을 마친 레휘는 곧장 시선을 옮겨 다른 증거를 훑어보아야 마땅했으나, 자신이 그렇게 매몰찬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시선 이동을 유보시켰다.


그 밑동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레휘는 천천히 오른손을 왼쪽 허리춤으로 옮겼다.


나무 밑동 위로 돌기처럼 살짝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역광의 무언가는 새어 들어오는 빛 사이로 놀리듯이 실루엣을 비추었다. 레휘는 그 실루엣이 무엇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어느새 어둠에 꽤 눈이 적응을 한 덕분인지.


실루엣의 실체, 레휘의 경계의 대상, 고블린은 커다란 코를 킁킁거리면서 턱을 치켜들었다. 고블린의 안광이 언뜻 역광을 받아 번득였다.


고블린은 소리로 위협을 하지도, 그렇다고 꽁무니를 빼지도 않았다. 그 대신 굉장한 속도로 레휘를 향해 몸을 날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는 걸 인식하기도 전에 목을 향한 저 두툼한 푸주칼이 제 용도를 훌륭히 증명해 냈을 것이다.


다행인 점은, 레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레휘는 검을 채 빼낼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뒤로 반 걸음 내딛으며 후방 점프했다. 땅이 끈적거리며 레휘의 신발 밑창을 잡아끌었다. 그 때문에 점프가 살짝 부족했고, 그래서 고블린의 푸주칼은 레휘의 코와 아슬아슬한 거리만를 두고 반원의 궤도를 그리며 지나갔다.


레휘는 식은땀이 등줄기를 훅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선선하고 차가운 숲의 바람 때문에 그 감각은 더욱 뚜렷했다.


그를 떨쳐내려는 듯 레휘는 왼손을 거칠게 앞으로 내뻗었다.


"랑아!"


그의 왼손은 금세 푸른색 불꽃으로 뒤덮였다.


그 불꽃은 마수사 특유의 인의 형태로 손가락 각각으로 옮겨 붙더니 금세 하나의 원을 완성시켰다. 그 원은 손가락을 벗어나 공기 중을 캔버스 삼아 점차 크기를 키워갔다. 점차, 라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푸른 불꽃의 원 속에서 돌연 푸른 연기가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뿜어져 나왔다. 고블린은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가래 끓는 소리를 내뱉으며 푸주칼을 몇 번 더 휘저었다. 하지만 그 동작은 푸른 연기가 형상을 만들어내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푸른 연기는 곧 늑대의 형상이 되었다. 가장 먼저 형상화한 건 뾰족하면서도 늑대 특유의 이를 드러낼 때 드러나는 주름이 가득한 주둥이였다. 고블린에게 안된 일은, 그 주둥이가 꽉 닫힌 게 아니라 커다랗게 열려 있다는 점이었다.


레휘는 마치 왼손이 부서져라 주먹을 쥐었고, 그 신호에 맞춰 '랑아'는 채 대가리가 완성되기 전의 주둥이만을 놀려 이빨을 콱 앙다물었다.


얇고 단단한 금속이 부러지는 소리가 숲 중간을 꿰뚫으며 종탑의 종이 울리듯 울러 퍼졌다. 푸주칼의 날은 비스듬한 절개선만 조금 남긴 채 무척이나 짧아져 있었다. 이제 그건 칼이 아니라 칼 손잡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았다.


레휘는 지체 없이 랑아의 형상을 흩트리며 오른손으로 빠르게 검을 뽑아냈다. 소리 하나 없이 깔끔하게 뽑아져 나온 레휘의 검은 그 자신이 잘 갈음질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증명해 냈다.


검은 사용상에 있어서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소리 하나 없이 푸주칼 뒤에 있던, 뾰족한 코를 가지고 있던 동그란 머리통을 몸에서 떼어낸 레휘의 검은 파란 피를 구불구불, 자기주장이 강한 나무들에 뿌리면서 반원의 궤적을 그려냈다.


진흙의 질퍽거리는 소리가 두 차례 이어져서 들려왔다. 하나는 가볍게, 하나는 꽤 묵직하게.


레휘는 숨을 몇 차례 몰아쉬고는 이내 검을 다시 왼쪽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고블린은, 오크의 사역이다. 오크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 숲에 오크가 있는 건, 마을에 사람이 있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이 숲은 오크 수림이므로. 이곳 어디에 오크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 군집들은 이 숲의 깊고 은밀한 곳에 수립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므로, 이토록 마을에서 가까운 숲 초입에서 오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요 최근 들어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레휘의 긴장감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크들은 자신들이 숲에 감금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인간들에게 오크 자주국을 인정하라며, 그러지 않으면 봉기를 일으키겠다고 서문을 보내온 것이다. 그 많은 오크 군락을 통폐합시킨 오크 절대 군주라도 나타난 것일지. 아무튼 이미 명백히 나뉘어 있는 국경에 분란을 일으키는 이 서문은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반려의 원인이라는 것도 참 가관이다. 이 나라의 공식적인 입장은 바로 서문이 전통적인 양식에 따르지 않은 비공식적인 문서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레휘는 코웃음을 치면서 몸을 돌렸다. 오크에게 공문서 서식을 지키길 요구하다니. 이것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요 근래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런 재미있는 생각을 이제는 머릿속에서 지울 때였다. 레휘는 막 발견한, 오크의 비공식적인 문서 형태보다 흥미로운 진흙 자국으로 흥미를 옮겨갔다.


그 자국은 거대한 지그재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바퀴자국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그 마차의 마부는 거나하게 취해서, 그 취기를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자신의 말 주둥이를 붙들고 거기에도 밀술을 잔뜩 때려부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말과 마부가 동시에 만취한 마차라면 이 정도의 파괴적인 결과도 납득이 되지. 레휘는 자신의 추리에 만족하며 지그재그 형태의 흔적으로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