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긴의 탈피(2)

by 김디트

"뱀이라구요?"


"그렇다니까요."


나무꾼은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냥 뱀이 아니었습죠."


그냥 뱀이라면, 나무꾼의 이야깃꺼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야깃꺼리보다는 반찬거리에 더 잘 어울리는 소재다. 나무꾼들 사이에서 뱀이 보양식으로 이름이 높다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레휘는 직업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그 진위여부를 덮어놓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나무꾼의 말을 경청했다.


"무엇이 그렇게 특별했죠?"


나무꾼의 침 삼키는 소리가 훈훈한 오두막을 뒤흔들기라도 할 듯 했다.


"어마무시했죠."


"그랬겠군요. 아니, 네. 그러니까 무엇이 그렇게나...?"


나무꾼은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뭐긴 뭐겠습니까. 크기죠, 크기! 그냥 큰 게 아니었습니다. 이 집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랬죠. 아마 몸통으로 잘 휘감으면 이 마을의 어지간한 집들은 한 방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일껄죠? 그리고 쉬익거리는 소리는 어찌나 큰지,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레휘는 그 정도면 진즉 마을을 덮쳐와서 이 귀찮은 인간들을 몰살시키지 않고 뭘 하고 있는걸까요? 라는 쓸데없는 질문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을 정도로 직업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아니었다. 레휘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나무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보고 말았단 말입니다."


레휘는 약간의 지루함을 쫓으며 물었다.


"무엇을..?"


"그 사악한 놈의 둥그스름한 대가리 끝에 있는, 그, 그...."


"그..?"


"그건, 그건..."


레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시체였나요?"


"... 네. 그, 그렇습니다."


나무꾼은 시체라는 말을 채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놈이 잔뜩 씹고 물고 뜯은 것이 분명하겠죠!"


레휘는 피비린내는 얼마나 났었는지, 뱀이 사람을 물고 있었다면 쉬익 소리는 대체 어떻게 낼 수 있었는지, 그 정도의 뱀이었다면 나무꾼 당신은 어떻게 살아 나올 수 있었는지, 등등의 효과적인 반박들은 잠시 미뤄두었다.


"저런, 큰일이었군요."


레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어 말했다.


"근데, 그게 저에게 의뢰를 해야 할 정도로 큰 일입니까?"


"네?"


"그냥, 그러니까, 나무를 하는 일을 좀 쉬면 되는 일 아닙니까? 숲은 넓고, 오크들은 난리를 부리죠. 뱀 같은 건 몇 달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거기까지 말한 레휘는 약간의 후회를 담아 나무꾼의 눈치를 살폈다. 오, 과연 그렇군요. 조금 쉬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겠군요. 괜히 방랑 해결사에게 돈을 쥐여줄 필요도 없고. 따위의 반응이 나온다면 안될 말이다.


다행히 나무꾼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레휘가 바라던 반응이었다. 궁금증도 풀고, 의뢰도 수락하는.


"검사님도 아시겠지만, 곧 겨울이 다가옵니다."


"그렇죠."


나무꾼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 모르십니다. 몰라도 너무 몰라요. 칼 쓰는 일밖에 모르니, 세상 돌아가는 걸 알리가 있습니까."


"네?"


"겨울이라니까요. 겨울. 곧 추위가 기승을 부릴 겁니다."


레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곧 나무의 수요가 폭증하겠군요."


"그래요. 우리 나무꾼에겐 겨울이 대목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뱀이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문 때문에 제 밑에서 일하던 빌어먹을 놈들이 전부 파업을 선언하고 말았단 말입니다. 헛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죠. 저도 직접 보고 말았으니까요. 그 커다란..."


"네, 그렇군요. 잘 이해가 되네요."


레휘는 또 쓸데없는 말을 내뱉었고, 금세 후회를 곱씹었다.


"떠돌이 무지렁이도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오크 수림에 인접한 이 작은 마을은, 외지 치고도 부쩍 황량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쌀쌀해져 오는 날씨 때문인지 거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남아 있는 발자국의 수도 확연히 적다. 세상은 겨울에 부쩍 다가선 것이다. 날씨도 그렇고 정세도 그렇고.


레휘는 왠지 마음까지 쌀쌀해지는 것 같아, 포근한 것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포근하다기보다는, 좀 더 화끈하고 뜨거운 것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레휘는 가슴팍으로 스윙도어를 밀어젖히며 훈훈한 열기가 가득한 건물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초겨울의 찬바람에 상기된 볼이 후끈거리는 걸 즐기면서 미적미적 바를 향해 걸어갔다.


술집의 인테리어는 아주 미적이라고 보긴 힘들었지만, 손때가 구석구석 묻어있어서 정감이 갔다. 나무로 세워진 튼실한 기둥 여기저기엔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주정뱅이들이 저기에 손을 얹고 어지러움을 다스렸을지 쉬이 상상이 가능했다.


레휘는 털썩하고 주저앉았지만, 가죽 방석 같은 호사스러운 물품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술집의 딱딱한 나무 의자는 텅, 하고 공허한 소리를 낼 뿐이다.


실내는 따뜻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포근하지만은 않았다. 이 좁은 술집이 기묘하게도 무척 넓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로는 술주정뱅이들이 주먹다짐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실내 중간 부분을 비워둔 덕도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인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녁 무렵의 술집의 풍경 치고는 지나치게 을씨년스러웠다.


레휘는 살짝 눈이 감겨오는 기운을 쫓으면서 바 자리에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유일한 손님에게로 시선을 옮기던 참이었다.


술집 주인은 작은 오크통 모양에 손잡이가 달린 잔을 슥슥 닦으면서 은근 무언가를 종용하듯 시선을 던져왔다. 레휘는 주인과 눈빛을 교환한 후 턱으로 주인의 손에 들려진 맥주잔을 가리켰다. 술집 주인은 콧수염이 살짝 흩날릴 정도로 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레휘가 다시 유일한 손님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그 유일한 손님 역시 입가에 묻은 거품을 소매로 대충 닦아내며 레휘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 손님은 꽤 실용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깨선 위로 몇 번이나 둘렀을 망토는 상당히 흘러내려서, 거의 팔꿈치까지 내려가 있고, 그 속으로는 질긴 가죽 베스트와 제법 두꺼워 보이는 셔츠를 껴입고 있다. 아래로는 상당히 타이트한 바지가 롱부츠 속으로 갈음되어 정갈했다. 부츠는 에이징이 멋들어지게 된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길게 늘어져서 둥글게 말려 있는, 마찬가지로 길이 잘 들은 듯 번들거리는 가죽 채찍이 그 손님의 거친 숨에 맞춰서 뱀 꼬리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손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검사시군. 이런 벽지에 어울리는 직업이긴 한데."


"그러는 그쪽은 마부시군."


마부는 히죽 웃더니 고개를 맥주잔 쪽으로 돌려서 한 모금 머금었다. 마부의 목청이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것에 맞춰서 레휘도 침을 꼴딱 삼켰다. 주인을 향해 재촉이라도 하려는 찰나, 레휘의 맥주잔이 바 위에 탁 소리와 함께 얹어졌고, 그 순간 레휘는 입을 무언가를 내뱉는 용도보다는 밀어 넣는 용도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맥주는 쌀쌀한 마음에 즉시 효력을 발휘했다.


레휘는 막 만난 마부와 금세 지기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덕에 마부와 마을의 사정을 간략하게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


이 마을은 오크들의 봉기가 있고부터 많은 탈주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제 그것도 끝물이라는 것. 이젠 정말 돈 안 되는 가난뱅이들만 남아 있어서 마부 길드에서도 그 의뢰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


여러모로 혀 끝이 까끌까끌해지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레휘는 다시 맥주를 머금어야 했다.


하지만 말문이 터진 마부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거, 위험수당을 추가로 받아야 할 정도라고. 오크와 고블린들이 턱 끝까지 다가서서 숏소드를 겨누는 기분이란 말이지."


"아니, 그럼, 왜 굳이 의뢰를 받아들인 거지? 당신 말 따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일 텐데."


"그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마부는 레휘의 사뭇 감탄하는 시선을 눈치채고는 버럭 신경질을 내면서 이어 말했다.


"무슨 대단한 국위선양 같은 게 아니라! 그러니까 똥간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치우는 사람도 있다는 의미라고. 길드 외적으로는 돈 안 되는 의뢰라고 거부하면, 그에 따른 페널티를 매기겠다고 난리고, 내적으로는 빌어먹을 윗대가리 놈들이 알력싸움을 한창 해대고 있단 말이지. 우리 대가리 쪽의 입장은, 빌어먹게도 이런 외지 일거리를 거부했다간 책이 잡힌다는, 그런 말이지."


"흠.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건가?"


"완전 터졌지. 빌어먹을."


마부는 오른쪽 허리춤을 부여잡으며 과장스럽게 인상을 찌푸렸고, 둘은 이내 껄껄 웃었다.


"어딜 가든 권력 싸움이 문제로군.'


"그래, 맞는 말이야. 제길."


마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휘는 거기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도 위험수당을 좀 더 받아야 옳은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잠깐 했다. 하지만 이내 어지러움이 도져서 맥주잔 속으로 코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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