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휘는 진창이 발을 끈질기게 끌어당기는 게 영 거슬렸다.
레휘는 짜증이 섞인 몸짓으로 제자리에서 몇 번 발을 굴렸다. 바닥은 찹찹, 하는 물기 어린 소리로 화답했다. 레휘는 그 찹찹 소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소리는 꼭 피를 즈려밟는 걸 연상시켰다.
레휘는 입술을 잘근거리면서 혹 빠뜨린 게 있을까, 다시금 마차 안쪽을 찬찬히 살폈다. 마차 내부는 어제 오후에 마신 맥주를 뱃속에 온존 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마차 안쪽의 애초에 몇 개 되지 않았을 나무상자들은, 이제 나무상자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조각조각이 나 있었다. 나무 조각은, 나무판자일 때의 효용성과는 반대되게도 참 무가치하고 어떻게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그리고 몇몇 나무 조각들은 자신의 그 위험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마차 벽에 가만히 기대어 앉아 있는 여성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 창백함의 원인은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복부에 꽂혀 있는 몇몇의 나무 조각들 하며 그 주위로 마치 케첩이라도 한가득 쏟은 듯 새빨갛게 점묘화를 수놓고 있는 꼴은, 이 참상을 더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레휘는 부서진 마차 벽면에 오른손을 짚고 허리를 깊게 숙여서 왼손으로 피를 훑었다. 피의 점성이 레휘의 왼손을 휘감았다. 적당한 온기가 감돈다. 피가 흐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군.
레휘는 결단과 함께 피비린내와 습기가 뒤섞여서 코 안쪽을 뒤틀어놓는 마차 안쪽에서 얼굴을 빼냈다. 그리고 아까 전 유심히 살펴보았던 지그재그 흔적으로 다시 관심을 옮겨갔다.
지그재그 흔적은, 안타깝게도 레휘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방향, 그러니까 마부가 술에 잔뜩 취해서 마차를 몬 결과 생긴 흔적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말의 아쉬움을 느끼며 레휘는 어젯밤 마지막 장면을 힘겹게 상기해 보았다. 마부의 빨간 얼굴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뒤틀리는 이미지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지그재그 흔적은 얼마나 오래 성장했을지 모를 커다란 나무 앞에서 끊겨 있었다. 레휘는 어쩔 수 없이 지그재그 흔적을 반대 방향으로 훑어나갔다.
레휘는 곧 흥미로운 흔적을 추가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흠,"
지그재그 흔적 끝에 이어진 것은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레휘는 턱수염이 부쩍 자라나는 기분 때문에 까끌까끌한 턱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발자국을 응시했다.
가죽 부츠의 밑창으로 추정되는 그 뚜렷한 발자국은 지그재그 흔적, 뱀이 움직이며 생겨나는 고유의 그 유려한 곡선형 자국의 시작점에서 딱 끊기고 있었다.
이는 명백한 증거였다. 발자국의 주인공이 이 뱀의 흔적과 유력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 즉, 이 발자국의 주인공이 뱀으로 변했다는 증거. 이제는 마수를 믿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비웃음이나 살 법한 신화적인 이야기지만 말이다.
레휘는 뱀의 흔적을 손뼘으로 가늠해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나긴이로군."
비록 일부분이라지만, 나무꾼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
"뱀이 용이 된다니, 너무 신화적이지 않아? 사람들이 도통 안 믿을 법도 해."
코랄블루는 코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오래된 책 냄새가 레휘의 코를 찔러댔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낮의 햇살이 레휘의 작은 움직임에 맞춰 이쪽 책 등을 비췄다, 저쪽 책 등을 비췄다 했다. 어디에 앉아 있었을지 모를 먼지들이 눈처럼 가라앉다가, 다시 하늘 위로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고서를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주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서 사지 않을 책을 펼치고 있는 건, 주인의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일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시간 때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레휘는 코랄블루가 들고 있는 책을 흘끗 바라보았다. 표지엔 레휘가 알아보기 힘든 룬 문자가 가득 적혀 있었는데, 이해되는 부분만 읽어서 때려 맞춰 보자면, 아마도...
"마력과 정기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서야. 오래된 연구라서 제법 구식의 정보를 담고 있지만, 저자의 논점이 흥미로운 책이네."
코랄블루는 레휘의 시선을 눈치채곤 즉답했다. 레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나도 그 정도 룬 문자는 읽을 줄 알아."
"과연 그럴까? 아, 그래. '정기'라는 단어 정도는 읽을 줄 알겠지. 직업이 직업이니까 말야."
코랄블루는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자, 내 책에 대한 신경은 이제 접어두고, 하던 이야기나 마무리해 봐. 나긴에 대한 이야기였잖아?"
코랄블루는 손바닥 위의 책을 텁 소리가 나게 덮었다.
레휘는 자신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수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책이었는데, 그 두께가 들판에서 망토를 두르고 노숙할 때 베개로 사용하기 딱이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선 전혀 흥미로울 게 없었는데, 그야 마수사라면 당연히 숙지하고 있어야 할 정보들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려 마수사의 눈으로 보면 이건 아닌데 싶은 정보들도 제법 실려 있었기에, 이 책의 저자가 마수사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는 정도의, 그런 학술적인 책이었다.
이번엔 레휘가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너도 다 아는 내용이잖아. 마수사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고."
"그래? 근데 난 마수사가 아닌걸?"
코랄블루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빙긋 웃었다. 햇볕이 따뜻한 건지, 코랄블루의 웃음이 따뜻한 건지, 레휘로서는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 마수사가 아니라 마수사 '였었'지요. 마법사 님."
"잘 알고 계시네요, 현직 마수사 님. 그럼, 마수에 대한 강의나 계속해 주실래요?"
코랄블루는 자신의 책을 탁 소리 나게 덮으면서 말했다. 책 사이에 있던 먼지들이 작은 폭발처럼 빛을 튀기면서 동그랗게 퍼져나갔다.
레휘는 별 수 없이 책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긴. 뱀 마수. 긴 시간 성장하면 특정 시점에 다른 개체의 신체를 장악할 수 있다. 또한, 뱀과 장악한 신체 두 가지 모습으로 모두 변할 수 있다. 그것을 나긴은 '허물을 벗는다', 즉 탈피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그래. 거기까진 아까 읽었고. 그다음엔 아마 이렇게 적혀 있었지?"
레휘의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을 즐기며 코랄블루가 말을 이어 나갔다.
"도합 열 번의 탈피를 성공하면 나기는 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마법사 치고는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 마법사는 만물에 흥미를 두는 사람을 일컫기도 하거든."
"매우 뻔뻔한 사람을 두고도 마법사라고 하지."
이번엔 레휘가 책을 덮었다. 코랄블루는 빙긋이 웃었다.
잠깐 정적이 그들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어때?"
"뭐가?"
"용 말이야."
코랄블루가 말을 이어 나갔다.
"나긴이 탈피한 게 용이라면, 그 용도 마수잖아. 용이랑 계약을 맺을 생각도 있어?"
마수사는 얼마나 유용한 마수와 계약을 맺는지가 본인의 가치에 대한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답은 당연히.
"당연하지."
레휘는 '너는 어때?' 라고 물으려던 걸 겨우 참았다. 코랄블루는 더 이상 마수사가 아니다. 마법사였다. 마수사였던 마법사.
하지만 그와 오랜 기간을 함께한 코랄블루는 레휘가 삼킨 말을 쉽게 읽어냈다.
"안타깝지만 말야. 마법사는 용과 싸우는 역할이야. 용과 계약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수사 아저씨. 나긴이 용이 되는 건, 네가 마법사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란다."
레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는 말이지. 열 번의 탈피란, 햇수로만 따져도 적어도 천 년은 걸리는 일일 테니까."
코랄블루는 눈을 가늘게 떴다. 레휘는 눈썹을 S자로 만들면서 또 뭐가 그렇게 이 여자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방금 전까지의 자신의 언행을 복귀해야 했다.
"꼭 나긴처럼 이야기하네?"
"뭐가, 또."
"열 번의 탈피라니, 나긴의 시점이잖아. 정확하게 말해야지. '열 명의 제물을 잡아먹어야 한다' 라고."
"흠."
레휘는 코를 부볐다.
"그게 그거잖아."
코랄블루의 눈의 더 가늘어졌다. 시선이 얇아짐에 따라 얼굴도 서서히 차갑게 가라앉았다. 따스한 햇살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냉기라고, 레휘는 코를 킁 소리 나게 빨아 당기며 생각했다.
코랄블루는 표정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마법사고, 네가 마수사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