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공백 시간이 있다. 다른 업종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로그래머에게는, 특히 C++ 프로그래머에게는 업무 중 팝콘이라도 튀겨지는 것처럼 툭툭 공백 시간이 생겨난다.
오래되고 투박한 도구일수록 좀 더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품과 시간이 많이 들게 마련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도 개발 도구의 일종인지라 이에 정확히 부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C++은 C 언어를 기반으로 83년에 만들어진 언어로, 83년 당시에는 아마도 증기 기관이라도 개발한 것처럼 혁명적이라고 난리통이 일어났겠지만, 이제 와서는 역시 좀 구닥다리 느낌이 없잖아 있다. 어떻게 보면 증기 기관차가 칙칙폭폭 지나갈 때 낳는 그 어떤 간지 같은 게 C++라는 언어에도 있는 셈이라 레트로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취향 저격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취향과 실리는 늘 간격이 벌어져 있는 터라.
잡설이 길어졌는데 결과적으로 C++은 빌드, 그러니까 나의 작업 후에 일어나는 과정, 내 코드를 컴퓨터가 해석하고 적당한 피드백을 주기까지의 과정으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내가 코드 작업을 마치고 마침표처럼 빌드 버튼을 누르면 통합 개발 환경, IDE의 아래쪽에 위치한 초록색 막대기가 열심히 피치를 올리고, 로그가 슝슝 하나 둘 찍혀 올라오기 시작한다. 짐짓 분주해 보이지만 그건 마치 할 일이 없어서 열심히 일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문서를 연신 위아래로 스크롤하는 신입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정말 오랫동안 컴퓨터는 분주한 척 요란이고 나는 기다리다 지쳐 하품을 한다. 연신 하품만 하고 있을 순 없는 일인지라 나는 그 공백 시간을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공백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게 일정하지 않아 계획적으로 활용할 수가 없다. 컴퓨터, 그러니까 계산하는 기계라면 빌드에 걸리는 시간도 철저히 계산해서 얼마 남았는지 정확하게 표기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또 이럴 때는 은근히 감성적인 기계라서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그 초록색 막대기, 프로그래스바로 대충 퉁쳐버린다. 나는 툴툴거리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아무튼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데 싶어 차분함을 되찾는다. 이걸 만든 사람도 분명 프로그래머일 텐데 싶은 생각에. 그래서 나의 고민은 바로, 이 들쑥날쑥한 공백 시간을 대체 어떻게 가용해야 좋을까 하는 점.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이 공백 시간을 활용해 보고자 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게 시간 활용의 화룡점정이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역시 독서 정도일까. 회사에서도 업무 관련으로 공부하는 것에 크게 터치하지 않는 입장인지라. 하지만 일정하지 않은 공백 시간은 독서의 흐름을 수차례 끊어냈다. 마치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수차례 번복하는 상사 밑에서 우왕좌왕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렇게 집중력을 좌우로 왕복, 토끼뜀을 시키다 보니 책도 안 읽어지고 코드도 안 읽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고, 그래서 나는 책을 고이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하는 마음의 또 다른 시도가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이어진다. 코딩도 글쓰기에 비견되곤 하니 그럼 글을 써보자. 같은 코딩이라면 결이 비슷하니까 왕복하는 거리가 그나마 좁지 않을까? 업무 외적인 코딩을 해보자. 아예 다르지만 시간은 적게 걸리는 그림을 그려볼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전부 다 아니라는 결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다고 했던가. 그랬다. 반 마리도 못 잡는 일이 허다했고, 그런 주제에 지쳐만 갔다. 쉴 새 없이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려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욕심이 화를 부른 건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어느 날 갑자기 후끈거린 두통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두 마리 토끼고 뭣이고 토끼 생각은 포기해 버리고 두통만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대체 뭐 때문일까, 두통의 원인을 역추적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게 뭐냐면.
'요 최근엔 멍하니 시간을 보낸 적이 없네.'
몇 번을 기억을 뒤집어엎어도 그 멍한 시간은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책을 읽던가, 코딩을 하던가, 쉬어야지 하면서 핸드폰을 들고 인터넷을 하던가. 자투리 시간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가진 것처럼 늘 뭔가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 직전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잠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문득문득 불안해져서 핸드폰에 손을 뻗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멍해져 봐야지! 하고 바로 멍해질 수 있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고. 그나마 이따금 하곤 했던 명상 영상을 틀고 복식 호흡하기가 멍해지는 것에 가장 근접한 상태라는 것, 그래서 호흡에 집중하면 다른 걸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는 것 정도가 지금의 현황이다. 아, 두통도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 이유로 내 다이어리엔 '공백 시간 즐기기'라는 업이 또 하나 부여되었고, 오늘도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되도록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안 해야지, 눈을 꼭 감고 폰이든 컴이든 외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나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 다른 강박을 만든다는 점에서 좀 미묘한 해결책이긴 하지만.
21. 0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