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내가 정한, 되도록이면 달성해야 할 어떤 체크 리스트가 있다. 이를테면 흔한 모바일 게임들이 컨텐츠로 내세우는 일일 퀘스트 같은 것들처럼 말이다.
고백하자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그 일일 퀘스트의 목록 중 한 가지다. 얼른 마침표를 찍어서 퀘스트 달성 이펙트를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다. 그러니까 게임의 잡몹을 한 마리 한 마리 정성 들여 잡는 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일 퀘스트의 목록이라고 해봤자 두세개가량으로 그렇게 분량이 많지는 않다. 경험 상 이 일일 퀘스트의 분량이 장기적인 나의 컨디션을 좌우하기 때문으로, 조금만 분량 조절을 실패하면 한 달쯤 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확률로 번아웃이 찾아온다. 마치 게임에 매너리즘이 오면서 그 게임 아이콘조차 보기 싫어 꽁꽁 숨겨버리고 싶어 지는 마음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요는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정도를 잘 찾아야 한다는 것. 외줄타기 같은 일이다.
그 일일 퀘스트 중에서도 벌써 햇수로 3년을 넘게 하고 있는 퀘스트가 있다. 내 직업에 가장 맞닿아 있는 퀘스트인데, 그 이름하여 '1인 게임 개발'이다. 게임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고려하면 당위성이 큰 퀘스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히스토리를 밝히자면, 원래부터 이렇게 장기 퀘스트는 아니었다. 게임에서도 종종 기획 의도는 '설날 이벤트'처럼 단기 이벤트로 기획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그리고 이벤트 삭제에 반발이 심해서 차마 제거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퀘스트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예컨대 시작할 때는 산책 기분이었는데, 돌이켜보니 세계여행의 첫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늘어짐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이 퀘스트는 시작 전엔 반드시 따져봐야 할 '목표 기간 산정'조차 없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3년 내내 명확한 종료 일정도, 세세한 계획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조금씩 매일매일 방망이 깎는 장인처럼 미시적인 것들에 집착해 왔다. 게다가 전체적인 목표도 혼자서 쳐내기엔 지나치게 컸다. 나의 게임 선호도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토리가 관성으로 작용해서 스토리가 메인이 되는 게임을 만들어야지 하는 흐름이 된 것,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거기에 이어서 스토리가 메인이 되는 게임이라면 아무래도 역시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구한 장르, RPG로 해야지 했는데, 바로 그 지점이 문제였다. RPG 장르가 가지는 유기적인 이벤트들이 가지는 복잡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발을 뗀 바로 그 지점 말이다. 일직선적이고 단순한 이벤트들도 잔가지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나름대로 상상력의 대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얼굴이 붉어질 따름이다.
그런 이유로 이 퀘스트는 전체적으로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의례히 가지는 그런 문제점들을 잔뜩 가지고 있다. 여기를 고치면 저기가 고장나는 3년째 쌓아올린 내 코드가 그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나는 그 커다란, 온통 꼬인 실타래를 앞에 두고 망연자실한다. 그러면서도 내심 밑거름이 되는 실패였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진다. 아무튼 누가 강요해서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가 즐기기 위해 하고 있는 거니까 목표 달성에 그렇게 목맬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하고 그 묵직한 실타래 앞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고 자기 합리화가 깃든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그런 자기 합리화의 힘을 빌은 덕에 오늘도 이 실타래, RPG 장르의 2D 모바일 게임을 꾸준히, 조금씩, 찬찬히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근데 사실 이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표현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임 외적인 것들, 이를테면 게임을 만드는 툴까지도 만들고 가공하고 다듬고 있으니 말이다. 전체적으로는 '게임과 게임 도구'를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게임을 만드는 과정마저도 '일일 퀘스트'라고 말하는 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종합적으로 게임의 일환이 되는 셈이니까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표현으로 그쳐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의 요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게임은 내부적으로 정말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만 봐도 그래픽, 사운드, 유저 인터페이스 및 유저 경험(UI/UX), 그리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스토리, 레벨 디자인, 컨텐츠 디자인 등등. 그 때문일까, 혹자는 '복합 예술'이라고까지 말한다. 게다가 게임의 하위로는 너무 많은 장르가 있어서 '예술인가 스포츠인가' 같은, 장르를 특정하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을 토론까지도 오가곤 한다. 이처럼 게임은 너무나 많은 취향과 용법을 품고 있다. 즉, 이렇게 많고 다양한 요소와 취향이 모여서야 비로소 게임이라는 게 완성되는데, 이 모든 다양한 요소 각각에 모두 재능이 있지 않은 한 게임의 특정 요소들에는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걸 말하고 싶은건데. 결국 이 이야기도 자기 합리화를 위한 밑밥이었다는 슬픈 결론.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구구절절 나와 내 매일과 그 속의 개인적인 게임 개발에 대한 글을 쓴 목적이 바로 이 나의 자기 합리화를 직면하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게임에서도 일일 퀘스트는 달성한다고 해서 유저 자신의 어떤 개인적인 발전을 이끌어내진 못하니까. 그러니까, 그냥 만족도 충족으로 그치는 게 일반적이니까. 결국 그 자기 합리화를 방패 삼아 매일 쳐내고는 있지만 결국 내가 매일 게임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늘 그 만족도 만으로 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정확히 직면하기 위한 글일지도. 조금 슬프지만.
그럼에도 한 단계 나아가고 싶다. 일일 퀘스트도 빠지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적어도 일일 퀘스트의 달인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라도 희망찬 자기 합리화를 하고 싶다.
21. 02.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