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37
이번에도 주말을 망치고 나니, 뾰족하게 모난 눈으로 주위를 훑어보게 된다. 과연 저 사람들은 어땠을까, 가만히 노려보면서. 이따금 '이번 주말은 잘 보내셨어요?' 친근을 가장하여 그 속에 어두운 궁금증을 담아 안부를 묻는다.
다른 사람들은 그 길고 넓고 깊은 휴일의 강을 어떤 방식으로 건넜는가 가만히 짐작해 본다. 아마도 짐을 이고 바지를 정강이 위로까지 걷어올리고 직선 방향으로 곧장 건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장 안전한 다리를 찾아서 몇 번이고 두드려본 후에야 건너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배영 하듯 둥둥 떠서 언젠가는 강을 건널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넓은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강을 건넌다.
하지만 역시 말로 전해 듣는 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주말에는 큰집 갔다 왔어요', '이번 주말에는 아들과 요리해 먹었어요' 듣더라도 실제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내 머릿속으로 옮겨 담을 수가 없다. 그 타인의 경험들은 모두 내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상영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 팀장님의 경우 휴일에 뭐하느냐는 질문에 작년 초중반까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주말이 되면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한 시간쯤 하고 돌아와요."
한 시간 가량의 산책, 얼핏 명료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딱 떠오르는 명확한 산책의 이미지가 있다. 그렇지만 이 나의 명확한 산책의 이미지가 실제 팀장님의 산책과 일치하느냐 하면, 아마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나의 경우에는 산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평소에 신던 아무 신발, 예컨대 굴러다니는 반스 신발을 주워 신고, 노란색 후드티와 청바지, 그리고 롱 패딩을 대충 껴입은 채 헤드셋으로 귀를 꽁꽁 막고 음악 플레이 리스트의 랜덤 재생 버튼을 누르면서 집 밖으로 나선다. 음악 리스트처럼 산책 경로도 무작위로 섞어서 발길이 닿는 곳으로 아무렇게나 발걸음을 옮긴다. 어떤 길로 갈지, 어떤 음악을 들을지, 산책하는 나도, 나와 동행하는 휴대폰도 전혀 모르는 그런 산책이다. 하지만 보통은 무의식적으로 왼다리와 오른다리를 왕복하여 한참 움직이다 보면 높은 확률로 을지로 아크 앤 북에 도착해 있다. 아무래도 겨울 칼바람 같이 날카롭고 세찬 걸 수차례 얻어맞으며 걷다 보면 온기가 돌고 익숙한 공간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면 머리에 떠올라 있던 상념을 잘 정리해서 제자리에 넣어두고 요새는 어떤 책들이 잘 팔리나, 어떤 소품들이 새로 나왔나,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매장을 순찰하기 시작한다. 입구의 베스트셀러 매대와 주류 매대들을 지나서 색색별로 늘어서 있는 '아무튼' 시리즈 책들을 훑고 인기가 없는지 매번 같은 구성으로 구석에 박혀 있는 '프로그래밍' 파트도 한번 둘러보고, 노트와 필기구들, 그리고 반려동물들의 책이 모인 장소를 지나친다. 독립 서점이나 카페 창업, 1인 창업 같은 글들이 날 집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 경제, 주식 쪽도 한번 훑어주고. 그런 식으로 매장의 모든 물건들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순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 허벅지가 딴딴하게 부어올라서 도저히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쯤이 되어서야 허벅지를 두드리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니까 나의 산책이란 대충 상념과 책을 반반 비율로 볼 안에 넣어 잘 섞어서 거품기로 착착 잘 쳐내어 부풀어 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제각기 다른 조리기구를 집어 올릴 텐데,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반죽의 형태만 엇비슷할 뿐 전혀 다른 것들이 오븐, 전자레인지, 프라이팬을 통해 완성될 텐데, 그렇게나 다른 것들을 모두 '빵'이라고, 아니지. '산책'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팀장님에게 조금의 디테일을 더 요구하니, 팀장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정해진 동네 산책길을 한 시간 정도 걷는 거예요."
언뜻 명확해 보여도 여전히 디테일은 알 수 없었다. '정해진'은 어떤 기준으로 정한 것일까. 그냥 한 번 걸어본 후에 마음에 드는 경로를 택한 걸까, 아니면 이따금 눈에 띄는 '둘레길'처럼 시에서 관광 목적으로 조성한 명확한 산책길을 말하는 걸까. 그리고 한 시간을 걷는다는 말은, 한 시간이 지나면 급히 집으로 돌아간다는 걸까, 아니면 산책길이 끝나면 의례히 한 시간이 지나있다는 의미일까. 하지만 굳이 재차 되묻지는 않았다. 나는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소소하게나마 운동이 되겠네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만 역시나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의 주말이 속속들이 궁금하다. 시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마음 충만하게 즐겁게 보내는지, 아니면 나처럼 자괴감만 가득 채운 상태로 끝나버리는지, 다들 나와 같은지, 나처럼 시간을 욕망하는지 궁금하다. 예컨대 나는 휴일이 다가오기 전날, 금요일이 되면 늘 가슴 설렌다. 무척 흥분된 마음으로 'TC++PL 읽으면서 공부해야지', '개인 개발을 조금 해야지', '원격도 되는데 회사 코드 리딩이나 해봐야지' 무작정 계획을 세운다. 나란히 줄 세우면 초단위로 아껴가며 쳐내야 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다.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 일정을 저기에 집어넣고, 저 일정을 여기에 집어넣고 하는 식으로 요리조리 즐겁게 일정을 짜 맞춘다. 마치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막상 휴일이 시작되고 나면 그 흥분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면서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나면, 그리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주말의 시작이다. 이따금 머리가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핸드폰을 붙잡고 뒹굴거릴 때가 있는데 그런 날엔 밤늦은 시간까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런 주말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상상만 해도 고통스럽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마 또 그런 주말을 이따금 보내게 되겠지만.
그래서 궁금할 수밖에. 다들 욕망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사이클로 주말이 굴러가는지. 마치 처음 자전거를 타던 때처럼 조금 굴러가다 마는 이 주말들이 정상적인 것인지.
사실 직접적으로 '저처럼 그런가요?' 하고 물어보긴 부끄럽고, 그래서 아직까지 타인의 주말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21. 02.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