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지나온 월요일인데

1일 1커밋 #35

by 김디트

왜일까. 아무래도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지지 않는다. 월요일, 일요일을 지난 후에 오는 통증에 말이다. 내 일평생을 월요일,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투자했음에도 그렇다. 익숙해지긴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고통스러워지기만 하는데 나이와 건강을 고려하더라도 역시 이상할 따름이다.


아마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어릴 땐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이 이론이 옳았다면 그 시절부터 늘 내가 꿈꿔왔던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바로 이 시간은 즐거워야 당연할 텐데, 전혀. 여전히 늘어진 채로 피곤한 눈을 하고서 시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지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게임 만들면서 살면 월요일은 행복하겠거니 하는 헛된 망상은 빨리 버리는 게 좋을 거라고, 20년 후의 너는 여전히 일요일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발을 동동 굴리며, 조금이라도 더 일요일을 누리려고 늦게 자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될 것이라고,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 미래에 대한 희망찬 상상들을 와장창 깨뜨려 버리고 싶다. 난 지금 그 정도로 잔혹하다.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지금은 월요일을 제법 지나 보낸 터라 그나마 많이 희석되었다. 희석되었음에도 이처럼 사악한 분노가 가득한데, 아침에는 어땠겠는가. 분노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이불에 몸을 꽁꽁 싸맨 채 눈을 질끈 감고 정말 월요일 아침인가, 거짓말, 아닐 거야 하며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했다.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몸을 일으켰지만 그러다 분노로 지쳐서 결국 휴가에라도 생각이 미치면 큰일이다. 침대 머리맡을 더듬거려 휴대폰을 쥐고 느릿느릿한 손가락을 움직여서 팀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만다면.


'금일 휴가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저녁쯤에는 반드시 후회한다. 보통 그런 날엔 메시지를 보낸 직후부터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그렇게 잠이나 늘어지게 자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는다. 그러고 나면 벌써 시간이 4시쯤이 되어 있는데, 그냥 일반적으로 출근했더라도 슬슬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결국 실속 없는 휴가를 사용한 아침의 나에게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되는 거다.


물론 월요일이라고 해서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양치질하는 차인표처럼 분노에 가득 차 있는 건 아니다. 늘 그렇듯이 뾰족한 해결법이 없을 때의 해결법은 시간이다. 마치 목욕탕 온수 물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몸을 담글 땐 벌레에 물어뜯기는 것처럼 간지럽고 따갑다가도 점차 익숙해지면서 노곤 노곤 뜨거운 물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월요일도 그렇다. 어느 특정할 수 없는 순간을 지나면 가만히 몸을 담그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된다.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 직장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소속감도 마음을 채운다. 그런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아침의 내 결정을 행복하게 돌이켜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휴일의 나와 평일의 나는 분노와 행복 만큼이나 별개이고, 월요일은 이 둘 사이를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서서히 오가는 과정인 셈이다.


이렇게 나와 나 사이의 징검다리를 건너는데도 꼬박 하루치의 고통을 느끼는데,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건 대체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할까. 이따금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면서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이입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사실 그건 잘못된 표현이 아닐까. 되어보긴 커녕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문득 나의 그 오래된 오만함에 고개가 숙여지고 만다.


그러고 나면 적어도 내 통증의 원인에 대해서만은 윤곽이 드러난다. 주말의 나는 평일의 내가 하지 않는 일들을 한다. 그런 것들만 골라서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컴퓨터로 치면 '절전 모드'에서 '게임 모드'로 돌려서 다른 곳에 사용할 리소스들을 끌어모아 게임에 투입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못했던 게임을 몰아서 하는데 꼬박 하루를 투자했다. 즉, '일 하는 나'가 '게임하는 나'로 변화했는데, 거기에 더해 '게임 속 주인공이 된 나'로까지 변했으니 두 차례나 변화한 셈이다. 그 큰 변화를 한순간에 마치 합체 로봇 분리하듯 분해시켜버리고 재조립하려 했으니 통증이 없으면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아마 주말이 되면 나는 또 수만 가지의 다른 내가 되어서 이것저것 찔러보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또 월요일의 통증을 참지 못하고 이불속에 푹 틀어박혀 휴가를 써야 하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게 되겠지.


그렇게 되겠지만, 뭐 어쩌겠나 하는 심정이다.


21.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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