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은 들어오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번에는 제발 안 쌓였으면 좋겠다며 툴툴거렸다. 날씨는 동생의 그런 바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쉼 없이 펑펑 내리더니 오늘은 또 슬쩍 온도를 올린다. 밀당하는 날씨 덕분에 또 도로며 인도며 반들반들, 미끌미끌하게 잘 닦여졌다. 왁스칠이라도 한 것처럼 바닥들이 눈부셨다. 그 미적인 요소가 미끄러움을 야기한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게 완벽했을 텐데. 나는 군데군데 남아있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얼음 도로들에 시선을 빼앗긴 채로 염화칼슘이 뿌려진 곳으로만 발을 딛으며 출근했다. 난 여전히 길가의 낯선 고양이가 야옹야옹 뜬금없이 나를 부르는 것처럼 그 길 주변의 눈들이 어색하다. 아랫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눈이 어색하듯 그 옛날, 부산에서 이제 갓 대학교를 1년 채웠던 시절의 눈도 어색했다. 일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하면 더 어색할 수밖에 없다.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 친해지고 싶었다. 게다가 이제 대학교도 1년 씩이나 다녔으니, 눈 정도 보러 떠나는 건 일도 아니겠거니 하는 거만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친구들도 마음속에 다들 조금이나마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무리 중 하나가 군대를 가게 되었다고는 해도 그렇게 쉽사리 의기투합해서 강원도로 가자고 으쌰 으쌰 했을 리가 없다. 수많은 관광지를 재쳐두고 강원도를 결심했던 그때의 우리는 그만큼이나 눈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한 달만 있으면 가장 먼저 군대로 떠날 한 친구가 시간이 아깝다고 찡찡거렸고, 친화력 좋고 패릿처럼 생긴 다른 친구가 마치 마비노기 던전 파티라도 모으듯 여행 파티를 모았다. 각자 주머니에 있던 푼돈을 쥐고 파티에 가입했다. 부산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은,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에 비해 굉장히 멀고 험했다. 아마도 어렸던 것이다. 제 아무리 어른 기분을 내면서 강원도행을 결정했더라도. 우리는 수없이 농담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의 PSP를 나눠 만지면서, 눈을 감고서 다가오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안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20살의 경험 중 그렇게 멀리 떠나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살짝 떨리는 눈빛을 한 나머지 친구들도 아마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직 눈을 목적으로 강원도를 행선지로 정하긴 했는데, 강원도는 넓은 땅이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떨어진 난파 선원처럼 길을 헤매었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눈이었기 때문에 정말 난파된 것처럼 슬프고 괴롭진 않았다. 우린 부푼 마음으로 눈 속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웠는데, 이상하게 차갑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눈 위로 뛰어들어 누워 있는 친구 위로 다른 친구 하나가 뛰어들고 또 뛰어들었다. 그렇게 겹겹이 겹쳐지면서도 즐거웠다. 한 친구는 아직 눈과 서먹했던지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의 그 장면을 사진에 담는데 열중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아직까지 그때의 그 장면을 잊지 않고 컴퓨터 한쪽에 넣어둘 수 있게 되었다.
어딘가로는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 떼 목장으로 갔다. 거기엔 양은 커녕 눈만 가득했다. 관리인의 설명으로는 양들도 추위를 타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온 날에는 풀어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눈 때문에 풀려났는데, 양들은 눈 때문에 풀려나지 못하다니. 참 아이러니하지만, 사실 우리는 양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양 떼 목장의 언덕들을 거닐면서 양 같은 눈을 구경했다. 간혹 있는 목조 가건물 안에 들어가서 바람을 피하며 싸온 도시락을 까먹으면서도 얼른 다 먹고 나가서 눈을 구경하고 싶었다. 새로운 게 많은 시절이었다.
양 떼 목장을 지나고 나니 이젠 정말 목적지가 없어서 뗏목 타고 흐르는 대로 멀리멀리 흘러갔다. 정말 푼돈을 모아서 떠난 여행이었던지라 우리는 택시 한 번 타는데도 손을 벌벌 떨어야 했는데, 그 수전증 때문에 결국 그 여행에서 택시는 단 한 번도 타질 않았다. 우리는 그냥 계속 걸었다. 다리가 터져라 걸었는데, 20살의 젊음 덕분일까 다행히 다리가 터지진 않았다. 대신 이야기가 터졌다. 친구들은 계속해서 스타 리그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스타크래프트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던지라 친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하다가 간혹 아 그래? 정말?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친구들, 특히 패릿을 닮은 친구는 그 추임새를 유달리 좋아했기 때문에 작은 정보 하나라도 더 건져서 나에게 떠먹여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행의 많은 부분이 스타크래프트가 되어버린 이유로 우리는 그날 밤, PC방에서 날밤을 샜다. 아마 눈의 도시에 있는 PC방은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했던 것 같은데 부산의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무척 시끄러웠기 때문에 PC방 주인의 눈총 어린 시선과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을 수도 없이 받았다.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같은 걸 신나서 떠들며 하던 우리는 입을 조금만 벌리면서 이야기했는데, 입을 작게 벌린다고 소리가 작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밤새 주인의 시선과 요청이 이어졌다.
그 후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눈길을 걷는 일정이 이어졌다. 그 정도로 걷고 뛰고 눕고 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중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눈은 정말 징글징글하다고 하던 그 사람들의 마음을 말이다. 물론 겨우 하루 만에 다른 사람들의 20년분을 깨우칠리는 없었다는 사실을 후일 군대에서 눈이 올 때마다 몸소 느끼게 되지만.
그렇게 눈으로 고생을 하고 난 후로 13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해맑다. 눈 오리 틀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아직까지도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기다린다. 이번에 온 세 번째 눈을 보면서도 여전히 박수를 칠 듯이 좋아한다. 단톡방은 눈이 올 때마다 시끄럽다. 그 고난의 여행과 눈 오는 주말의 군대를 모두 거쳤는데도 여전히 그렇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이는 아랫지방 사람들의 숙명이겠거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