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가 바란 오늘의 건강

1일 1커밋 #40

by 김디트

식은땀이 나고 머리에 미열이 올라온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모든 의욕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두통은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던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침대에 누울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는데, 누워 있자니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감았던 눈을 뜨고 침대에서 하체를 겨우 끄집어내 바닥을 끌듯이 걸어 부엌 찬장을 열었다. 게슴츠레한 눈과 땀범벅의 손으로 상비약 통을 뒤적거려 진통제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빠져나갈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 정도만이 수확이었다.


오전부터 컨디션이 이상하게 안 좋다 싶었더니 오후 들어 급격하게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용암 같은 덩어리가 위 속에서 요동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양 눈썹을 S자로 만들면서 얼른 가벼운 소화제, 오타이산을 챙겨 먹었다. 내가 10년쯤 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플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곧바로 약을 챙겨 먹게 되었다는 점. 어떤 일이든 자주 겪으면 점점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보통은 이 정도 했으면 약간의 희생만으로 피해 갈 수 있다. 그랬어야 할 고통이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예외였다. 조금 가라앉는 듯하더니 그건 페이크였고, 금세 다시 부글부글 라면 냄비 들썩이듯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방법이 없었다. 머리가 아픈 건지 몸이 아픈 건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 되어서 소파에 누워 머리를 짚었다.


걱정이었다. 그러니까, 애인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애인은 기간제 교사로서 거의 매년 다가오는 큰 이벤트를 치르는 중이었다. 정교사의 빈자리를 메꾸는 용도로 손쉽게 소진되는 기간제 교사는 매년, 운이 좋다면 2년마다 학교를 옮겨야 했는데, 그 때문에 기간제 교사 면접을 보는 중이었다. 애인은 그렇게 면접을 보러 감에도 몇 차례나 장난 섞인 걱정을 하곤 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 걱정에 섞여 있는 진심에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그 전날, 면접을 마치고 나면 우리 집에 오라고 몇 차례나 당부해둔 터였다. 애인은 그러마고 했으나,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플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조금은 알았을지도. 애인은 자주 나에게 '유약하다'고 하곤 했다.


결국 애인은 곧 올 예정이었고, 나는 아팠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나 체한 것 같아."


애인은 걱정스럽게 '많이 안 좋냐'고 물었다. 사실로 정말로 그때만 해도 내 상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애인이 올쯤에는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인에게 '그렇지만 곧 나을 거다'라고 수차례 어필했고, 애인은 계획대로 우리 집으로 오게 됐다.


내 위장 속 덩어리는 점점 더 용암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애인이 집에 오고 난 후, 그리고 재택근무를 마칠 때쯤에는 급격히 심해져서 조금만 방심하면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애인은 걱정 어린 눈빛을 했다. 오늘 면접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을 애인에게 받는 걱정은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애인의 무릎에 누워서 여러 가지 의미로 얼굴을 찡그렸다.


"어휴, 이렇게 약해서 어쩌나."


내가 아플 때면 애인은 늘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렇게 말했다.


"나 튼튼한데."


"그렇나, 튼튼하나."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어젯밤은 그렇게 애인의 손길을 받으면서 긴 아픔의 밤을 이겨냈다. 아플 때면 의례히 건강한 몸을 사랑해 마지않게 된다. 건강하게 숨 쉬고 움직이고 활동하는 나의 그 모든 모습들이 이상하게 생경하다고나 할까. 제발, 낫게 된다면 절대로 그 건강을 허투루 쓰지 않겠습니다. 골백번 다짐하게 된다. 애인이 내 아픈 배를 옛날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살살 만져주는 와중에,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다짐했다.


어제 애인의 살핌 덕분인지, 나의 바람 때문인지 오늘은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다. 만약 나쁨과 좋음이 바 그래프 형태로 그려져 있고, 위에 화살표가 있다면 그 화살표가 중간 언저리는 가리킬 정도의 수준 정도로 좋아졌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오늘이 가기 전에 오늘의 글을 쓴다. 오늘의 건강은 어제의 내가 그렇게 바라던 건강이니까.


21.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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