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낙이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1일 1커밋 #41

by 김디트

"신기하다아!"


설날을 앞둔 대림상가는 조용했다. 대다수의 가게들이 셔터를 내리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마냥 살풍경하지만은 않았다. 방금 식사를 마쳐서 마음이 너그러웠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빵빵해진 배를 안고서 아직 싸늘함이 가시지 않은 밤공기를 가르며 대림상가의 계단을 올랐다.


애인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새롭고 아름다운 것에 쉽게 감탄하고 놀랄 줄 안다는 것이 애인의 사랑스러운 점 중 하나이다. 이어서 애인은 팔과 몸을 뒤뚱뒤뚱 흔들었다. 이따금 갑작스럽게 거리에서 춤을 추는 것도 그 사랑스러운 점에 포함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애인과 함께 몸을 흔들었다.


막 우리가 당도한 곳이 대림상가임을 알게 되었을 때, 애인이 마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감탄사를 내뱉으며 '아 여기가 대림상가구나!' 했기에 나는 '뭐? 왜? 뭔데?' 하고 조금 기대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대림상가는 딱 봐도 역사가 깊어 보이는 건물에 그 위로 새로운 구조물을 덧입힌 형태였고 그건 우리나라 근대사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추론을 거치는 중이었다. 애인은 역사에 박식했고 말이다. 하지만 애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응? 대림상가라고.' 같은 김 빠진 대답을 해서 나의 기대감을 순식간에 쪼그라든 풍선 쪼가리처럼 만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삶의 낙이 될 수도 있겠거니, 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나는 입버릇처럼 '삶에 낙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곤 했으니까. 이렇게 그냥 조금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발품을 팔아 간 곳에 기대하지 않았던 공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애인은 감탄했고, 나는 그 애인의 감탄을 보며 감탄할 수 있었으니까 비록 원래의 목적이었던 카페가 이미 마감을 마쳐서 커피를 맛볼 수 없었다고는 해도 충분히 이득을 본 기분이었다. 삶에 낙이 조금 차올랐다.


애인은 아직 가시지 않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진을 찍자고 했고, 낙이 차오른 나는 순순히 애인의 요구에 따를 기분이 들었다. 쭈그리고 앉으며 한쪽 다리를 살짝 빼라는 둥의 애인의 디테일한 요구를 쉽사리 수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낙이 조금 차오른 오늘의 나는 사진 속에 박제되었다.


얼마 전엔 그렇게 미루고 미뤘던 닌텐도 스위치를 구비했다. 이 세상엔 할 게임이 차고 넘치는데 대체 왜 새로운 게임기까지 사가며 할 게임을 늘려야 할지 몰랐던 이유로 지금까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뭐, 원래 겪어보지 못한 세계는 다 그렇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처음으로 동생과 유럽 여행을 갔을 때도 그랬다. 유럽 뭐,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 아닌가? 뭐가 그렇게 특별하기에. 근데 특별했고, 이번에도 특별했다. 유럽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우리나라에선 특별하게 느껴졌듯이 닌텐도가 만드는 퍼스트 파티 게임들도 뭔가가 특별했다. 시간만 나면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접속했고, 친구들과 함께 오늘 상점에선 뭘 파느니, 뭘 사놓으라느니, 두런거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빨리 게임 그만 하고 현실로 돌아가고 싶다."


"헬기 타고 출퇴근하고 싶다. 현실에선 2000마일이면 되는데."


업무 시간에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지경이 되었으니 꽤나 중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불안했다. 내가 만든 일상의 틀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때문에 원래 자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잤고, 조금 늦게 일어났다. 책을 읽거나 코딩을 하거나 하는 일에 조금 소홀해졌다. 몸을 보살피는 일, 이른바 운동 같은 것들도 조금 느슨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원래의 일들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낙을 즐겨야겠다고, 펜을 꽉 쥐고 다짐해야 했다.


하지만 뭐, 그래도 삶에 낙이 없는 것보단 낫지 않나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낙 때문에 무너질 인생이라면 무너져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오르내리며 같이 사는 동거인, 동생과 선배가 둘이서 마리오 파티를 하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21. 0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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