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니었다

1일 1커밋 #42

by 김디트

길었던 설 연휴가 끝이 났다. 마침표를 찍는 기분으로 간만에 넓게만 느껴지는 공백 앞에 마주 앉았다. 키보드에 먼지층이 생긴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손으로 대충 탈탈 털어내고 다시 공백을 마주한다. 그리고 가만히 연휴를 돌이켜 보았다. 전체적으로는 길었던 것도 같지만 하나하나 돌이켜 보면 짧았던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은 늘 이렇게 상대적이고 가변적이었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새삼스럽다. 새삼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한 자 한 자 글자를 적어 나가야겠다 하고 타이핑을 하고 있자니, 이제야 정말 나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다. 거기다 이제 경주는 정말로 정말 나의 집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고.


경주는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날씨가 좋았다. 그래서일까 설 전날엔 참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먹으러 왔다. 먹으러 간 게 아니라 먹으러 왔다. 그러니까, 우리 아빠는 경주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덕분에 나와 동생은 아침부터 서둘렀음에도 아슬아슬하게 타야 했던 버스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그 난리통에 투입되어야 했다. 그렇게 그 시장바닥 같은 고깃집 안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아빠의 짜증 어린 목소리를 감내하고 있자니 역시 이 곳은 나의 집이 아니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상경하고 나니 나와 동생은 명절 때가 아니면 굳이 고향집으로 내려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그 결과 우리는 명절 때만 고깃집에 잡혀가서 노동을 하게 되는 운명에 갇히고 말았다. 이번 설 전날도 바빴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더 심했다. 명절 전후는 대목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가족, 혹은 그 사이의 무엇인가의 관계인 이들은 그간의 회포를 풀기 위해서 고기나 술을 들이부을 장소가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바쁜 시기에만 집으로 찾아오는 우리는 아빠에게 적절한 노동력 그 이상이 아니었고. 동생은 친구들과의 선약이 있다며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곤 했기에 나만 남아 처절히 그 연기와 기름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기며 술이며 날라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손이 부족할 때가 많았고, 아빠는 본인의 동생들까지 가세시켰다. 삼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무임금 노동을 했고, 나는 미안했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나의 아빠를 대신에 미안함을 자주 표현해야 했다.


결국 삼촌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본인들이 이미 큰집에 내려와 있다는 연락을 먼저 나서서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더욱 가열차게 노동의 현장으로 끌려가야 했다. 아빠는 무정한 폭군처럼 무자비하진 않았지만, 비열한 간신배처럼 영악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애들 좀 불러라' 하며 우리를 에둘러 호출했다. 나는 엄마의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쥐고서 한숨을 연거푸 쉬며 옷을 대충 둘러 입고 아빠의 가게로 터벅터벅 걸어가야 했고 말이다. 엄마의 목소리에 담긴 미안한 감정을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늘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를 우리 가게로 잡아야 했고, 친구들은 서빙하느라 바쁜 나를 미안스럽게 바라보며 불편한 마음으로 술자리를 가져야 했다.


상황이 이러니 별 수 있나. 파블로프의 개처럼 명절이 다가온다 싶으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경주 집에 짐을 풀고 앉으면 더욱 노곤해졌다. TV를 켜놓고 멍하니, 마치 재앙을 앞두고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심정으로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 상황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의식을 놓았다. 엄마는 간혹 안쓰럽다는 듯이 과일이며 커피며 슬쩍 밀어주었다.


결국 이번엔 엄마가 분노했다.


"애들이 경주에 일하러 오나!"


엄마는 가게 일에 목이며 허리며 통증이 가시질 않는 몸으로 소리쳤다. 물론 아빠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엄마가 자세한 상황 설명을 해주진 않았기에 막연히 그 상황을 상상해볼 뿐이다. 엄마는 전화로 '가게로 나오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통화를 끝냈다.


그 이후 나와 동생을 호출하는 일은 잦아들었다. 정말 바쁠 때가 아니면 부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정말 편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나는 마음 한편이 너무 무거워서 친구와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가게 쪽을 바라보곤 했다.


이번 설 연휴도 그런 나날을 보냈다. 몸속 어딘가에 쇳덩이가 가득 차서 몸이 왠지 개운하지 않은 그런 하루하루. 힘이 쭉 빠진 채로 집안을 뒹굴다가도 문득문득 가게 쪽을 흘끗거리게 되는 나날들. 엄마와 아빠의 노쇠함이 언뜻언뜻 눈에 띌수록 그 쇳덩이의 무게 추는 더해져만 갔고,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더니 하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서울 집에 도착한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역시 집에 오니까 좋네."


21.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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