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도 주먹도 유리 그 자체
1일 1커밋 #43
애인은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여 나에게 덤벨 한 쌍을 사주었다. 덤벨은 어제 하나, 오늘 하나 마치 기차놀이라도 하듯 차례차례 도착했다. 어제는 덤벨 하나를 마주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애인은 핸드폰 너머로 방방 발을 굴리며 왜 하나밖에 안 왔냐며 당장 문의를 넣어야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두 개의 덤벨이 일렬로 들어가 있는 박스를 받은 후기를 봤다면서, 착오 배송한 것이 분명하다며 서로 분개했다. 그렇게 난리 난리를 부리며 넣은 문의가 무색하게 오늘 덤벨이 도착하자 애인과 나는 조금 겸연쩍어질 수밖에. 그래도 선물 받는 입장의 나는 겸연쩍음을 넘어서 신이 났다. 다이얼 덤벨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서 무게를 바꿔보느라 잠깐 넋이 나갈 정도였다.
애인은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모두 모았군. 튼튼해지렴."
그리고 방점을 찍듯 이렇게 이었다.
"더불어 멘탈도."
애인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요 최근, 나는 유달리 멘탈이 터져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달리 부정할 수도 없었고.
나는 늘 멘탈이 강인한 사람이 부러웠다. 세상의 그 모든 훼방을 그냥 가만히 모른 척 지나갈 수 있다는 건 나로서는 역시 상상이 되지 않는 경지다. 아마 나였다면 그 모든 훼방에 온갖 영향을 받아서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코드는 왜 이렇게 짰어요?"
팀장님이 이런 식의 물음을 해올 때면 오금이 저렸다. 나에게 한 말인가 하여 돌아보니 아니었고,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그나마 앉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이어서 했다.
"아 그거는요."
내 바로 옆자리의 프로그래머는 차분한 말투로 코드 설명에 나선다. 아무런 거리낌도 불안도 없는 말투와 행동. 팀장님도 비난의 기색이 없는 걸 보니 정말 코드의 히스토리에 궁금증을 느꼈던 것뿐인 것 같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그와 동시에 철렁했던 심장이 천천히 원래 박동을 찾아갔다.
늘 걱정이 많았다. 타인이 나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에 늘 촉각을 세우고, 혹시나 내 능력 이상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 껍데기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생각으로 복어처럼 몸을 부풀렸다. 사람들이 속았는지, 내가 잘 속였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에 눈치를 봐야 했다. 아마 그 눈치를 보는 행동이 내 멘탈의 수치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을 테고.
사실 이번에 온 멘탈 붕괴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 보면 맥락은 비슷했다.
일요일 밤, 동생은 술이 잔뜩 취해서 집에 왔다. 자주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저으며 다시 게임에 열중했다. 동생은 곧 소파에 누워서 잠들었기 때문에 나는 좀 더 편하게 게임을 하기 위해 방 안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이윽고 일이 벌어졌다.
'우당탕탕'
밖에선 동생이 난리를 치르고 있었고 난 정신이 아득해졌다. 동생이 이 정도 난리를 부리는 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동생은 하필 내 컴퓨터와 모니터가 위태하게 쌓여있는 곳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달을 보고 거대화하여 난리를 부리는 걸 처음으로 목격한 손오반 할아버지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냥 가만히 아득해하고만 있을 순 없었기 때문에 동생을 뜯어말리고 화내고 소리치고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 했다. 하지만 거대화한 원숭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동생에게 몇 번이고 밀려난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참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일까 그 당시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동생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내 긴 인생 동안 사람에게 주먹을 날린 횟수는 정말 한 손으로 꼽고도 몇 개가 남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 날을 전후로 그 손 안의 손가락 하나를 더 접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득이하게, 일지 무의식의 내가 그렇게 의도한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 주먹은 동생의 왼쪽 눈을 강타했다.
"하지 말라고, 좀!"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에 너무 놀라서, 그리고 동생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동생을 얼른 소파로 집어던지고 얼음과 마데카솔을 챙겨 왔다. 눈물을 좍좍 뽑으면서 동생의 눈을 매만졌다. 미친놈, 미친놈, 끝없이 자책하면서 얼음을 문질렀다. 동생은 술이 취한 와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헛소리를 주절거리면서도 내가 눈물을 흘리며 꽉 껴안으니 같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대충 동생이 진정된 시점쯤에 나는 얼른 도망치듯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눈물이 도저히 멈추지가 않았다. 자기 위해 눈을 감자 눈덩이가 시퍼렇게 부어오른 동생의 왼쪽 눈이 아른거렸다. 베갯잇이 눈물로 흠뻑 젖을 때쯤, 시간으로 치면 새벽 5시쯤, 그쯤에야 겨우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얕은 수면과 동생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들 때문에 결국 다음날 아침은 회사에 갈 수 없었다. 휴가를 쓰고 가만히 누워서 이를 빡빡 갈았다. 동생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듯해서 얼른 옷을 갈아입으며 방 밖으로 나섰다. 타박상에 잘 드는 약이라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동생은 어리바리한 눈으로 왼쪽 눈두덩을 만지작거리며 헤실거렸다.
"나 누구한테 맞았나?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눈물샘을 틀어막아야 했다.
그 이후로 쭉 멘탈이 터져 있다. 이놈의 유리 멘탈. 근데 유리인 건 멘탈 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폭력을 휘두른 내 오른손도 내 동생의 왼쪽 눈처럼 시퍼렇고 커다랗게 부어 있다. 주먹을 꽉 쥐는 것도 못할 정도로 퉁퉁 부어서 기껏 도착한 덤벨을 아직 제대로 쥐어 보지도 못하고 있다.
21.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