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일견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속으로는 과연 네가 어린 이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꼬인 심보가 느껴진다. 공자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든 말든 오독은 내 자유. 나도 모르게 그렇게 읽어버리고 만다.
고백하자면 나는 거만한 사람이다. 방심하면 잘근잘근 물어뜯어 톱니 모양으로 손톱을 뜯어버리는 것처럼 어느새 고압적인 면모가 나 좀 보라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고 만다. 그럴 때면 누가 볼 새라, 어머나 남사스러워라, 하면서 얼른 품 속으로 숨겨버리기 일쑤다. 그 덕에 거만함이 크게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나는 오늘도 겸손한 척, 머리를 긁는다. 물론 나 혼자만의 착각일 뿐, 측은지심에 다들 눈 감아줬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난 가끔 기분전환 삼아 트위터를 돌아다닌다. 여러 개발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할 겸 트윗을 하기 때문에 동기 부여에는 꽤 괜찮은 웹 산책이다. 그렇게 웹 산책을 하다 보면 간간히 꽤 좋은 작품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면 우선적으로는 오, 꽤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어디 어디 학생 입네, 하는 둥 하는 제작자의 미숙한 뒷배경을 본 후에는, 학생 작품이었잖아. 어쩐지 이런저런 점은 조금.. 하면서 곧바로 품평하는 마음으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고지식하게 늙은 할아버지가 짧은 치마를 눈을 흘겨 바라보며 큼큼, 헛기침을 하는 것처럼 나도 큼큼, 마우스 스크롤을 굴린다. 그러다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다. 또 저질러 버렸구나.
얼마 전에는 동생이 이중 주차를 하다가 실수를 했다. 앞에 세워져 있던 2층 자동차를 혼자서 빼고 넣고 하다가 벽에 살짝 긁은 것이다. 동생은 굉장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집에 들어왔다.
"아 씨, 좀 긁은 거 같은데."
내가 해줄 말은 없었다. 마뜩잖은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동생은 자동차를 다시 좀 빼서 어디를 긁어먹었는지 확인해야겠다고 했고, 나는 더욱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귀찮은 일은 혼자서 좀 해결하라고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아무튼 동생은 애절한 표정이었고, 그런 감정적인 것에 약한 나는 결국 패딩에 팔을 끼워 넣으면서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에 문외한이라 이 부분을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바퀴 윗부분에 붙은 플라스틱.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오른쪽 뒷바퀴 위쪽 범퍼, 아무튼 그런 곳에 살짝 흠집이 가 있었다. 동생은 휴대폰 플래시로 몇 번을 비춰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여전히 귀찮고 또 귀찮을 따름이었다. 속내는 이랬다. 이 정도면 그냥 둬도 모르지 않을까? 하지만 동생은 한숨 끝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진 좀 찍자. 말씀은 드려야지."
며칠 후 동생은 환히 웃으면서 이 일의 후일담을 말했다. 2층 분은 그냥 플라스틱인데요,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그래서 마음이 매우 후련해졌다고. 모르는 척하면 되지 않을까? 했던 나의 마음은 순간 얼굴이 붉어져서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린다. 숨는 것도 땅굴 속에 얼굴을 집어넣는 타조와 다를 바가 없구나, 자조한다. 늘 동생 앞에서 인생의 본질이라도 꿰뚫은 듯, 엄청나게 큰 어른이라도 된 양 굴어 왔지만, 잔뜩 부풀린 몸속에 독기 같은 허영심만 가득 찬 복어에 지나지 않았구나.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다행이다, 했지만,속으로는 그런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나의 거만함과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면 대면해도 그대로 마주 봐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렇게 가만히 거만함을,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마주한 난 마치 기술적 부채를 잔뜩 안고 있는, 위태위태한 라이브 서비스 코드 같았다. 손 쓸 새 없이 복잡도가 큰 코드들이 잔뜩 쌓여 버렸는데, 아무튼 돌아는 가니까 놔둬보자. 그런 심정으로 쌓아 올린 흔적들의 군집체 같다. 분명 당시에는 으쓱한 심정으로 작성했는데,지금에 와서 보면 실속 없고 지적 허영심만 가득한 코드, 주머니에 넣어둔 이어폰 줄처럼 단단히 꼬여버린 코드 같은 것들이 내 전반을 점점이 수놓고 있는 것만 같다.
어리고 실력 뛰어난 개발자,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 머리를 잘라 주면서도 한없이 꼼꼼한 내 동생, 세상엔 나보다 늦게 시작했어도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나는 아무리 수정해도 튀어나오는 버그 티켓을 또 한 번 해결 처리하는 마음으로 거만함을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