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업무를 이어가던 중, 문득 불안감이 머리를 스친다. 이런 종류의 불안감은 의식적으로 고개를 털어내지 않으면 도저히 떨칠 수가 없다. 이를테면, 아침부터 오늘은 카드값이 나가는 날이니까 돈을 이체해 둬야 한다고 몇 번이나 되뇌다가도, 밤늦게야 또 잊고 말았구나 탄식해버릴 것만 같은, 그런 종류의 불안감이랄까. 즉, 조금만 신경 쓰면 무탈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뭐, 아직 빌드 중이니까 조금 정도는 괜찮겠지. 이런 종류의 합리화가 빠르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나의 마우스 포인터는 또 돌이킬 수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간다. 그 조금 신경 쓰기는 이번에도 실패하고, 불안감은 또 적중한 셈이 되고 만다.마우스 포인터 끝에는 핫딜 게시판 링크가 걸려서 달랑거린다.
왜 나는 항상 가지지 못한 것에 얽매일까. 어린 시절, 나는 가지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정말 정말 어릴 때였다. 나는 정말 진실로 믿는다면 이루어진다는 글을 언뜻 봤고, 그래서 정말 진실로 믿어 보았다. 비록 편의점에서 막 데워 온 삼각김밥의 온기 정도의 뜨거움이었지만, 아무튼 진실로 진실했다. 오늘 아빠는 내 생일선물로 무선 RC카를 사 오실 것이다. 나는 믿는다. 아빠는 반드시 RC카를 사 오신다. 진실은 때론 잔혹하다. 아빠의 손에는 RC 카는커녕 그 흔한 장난감도 들려있지 않았고, 그날로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뭐, 과장이지만, 적어도 조금은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난 어른이 되었고, 여차하면 뭐든 살 수 있는 재력을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지지 못한 것을 갈구한다. 진실로 갈구한다. 오늘도 핫딜 게시판을 휘저으며 저렴한 품목이 없나, 혹시나 내가 놓치진 않았나 뒤지고 또 뒤진다. 저렴한 품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반평생 쪼들리는 지갑 사정 내로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내야 했던 습관이 체화되어 관성처럼 남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조급하게 만드는 그놈의 한정 할인, 한정 수량, 한정판들에 본능적으로 끌리기 때문일까.
그리고 또, 결국 물건을 구매해 버리고야 말았다면, 그걸로 만사 땡이 아니다. 물건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보관할 공간도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물건은 많으면서 공간은 고작 23평 남짓의 쓰리룸. 그것도 셋이서 쪼개서 살고 있으니, 약 8평 남짓. 겨우 8평 남짓한 공간에 욱여넣기에는 나의 물욕은 너무나 크고 거대하고, 그러면서 하찮다. 내가 핫딜 게시판을 들쑤시며 열심히 사 모은 수많은 잡동사니들은 여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거만한 졸부가 백화점 매장을 지나가며 여기서 여기까지 다 주세요, 해서 충동적으로 산 것들과 비교하더라도 질적으로, 그러니까 실질적인 가치를 넘어서 더 본질적으로 질적인 수준이 떨어진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적어도 그 졸부는 자신의 의지로 물건을 구매했을 테니. 나처럼 범람하는 마케팅들에 그야말로 홀라당 넘어간 이유로 장바구니를 마구 채운 건 아닐 테니.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아무래도 마음이 아프다. 내 방구석에 얌전히 찌그러져 있는 이북 리더기 같은 심정이 된다.
지식욕도 마찬가지다. 배우고 싶은 건 많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때문에 그 욕구는 온전히 서적 구매로 표현한다. 마치 쌓여가는 서적만큼 내 머리에도 프로그래밍 지식, 타지에 대한 경험, 음악적인 감각, 화려한 그림 실력, 유려한 작문 능력 따위가 늘어가기라도 할 듯, 무식하게도 쓸어 담는다. 그렇게 덜렁덜렁 양 손 가득 품에 안고 집에 도착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그 옛날, 개그콘서트에서 정종철 님이 기계처럼 내뱉던 띠로리로리 하는 효과음과 함께 나는 팔뚝을 걷어붙인다. 8평 남짓 속에서 테트리스를 해야 할 때이다.
어떻게 저떻게 다 읽은 책들은 저쪽 구석으로 밀려난다. 읽지 못한 책들은 일렬로 줄 세운다. 가장 읽고 싶은 책들부터 차례로 침대 머리맡에서부터 하나하나, 도미노 세우듯 세워 나간다. 오늘 산 책은, 보통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지 않다. 이 정도는 읽어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산 책들이 태반이고, 오늘 산 책도 그 범주에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그 범주는 그 뒤로 괄호치고 '마음의 부채'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지식욕에 충동구매하고 만 것들은 내 마음과 공간의 여유를 앗아간다.
그 탓에, 내 애인은 내 방을 들어설 때마다 이런 말을 반복한다.
"어휴 분잡시럽다!"
그리고 이따금 심플하거나 모던하거나 둘 다이거나 한 인테리어 포스팅, 혹은 인테리어 유튜브 링크를 보낸다. 나는 심드렁하게 손가락을 슥슥 놀리다가 이렇게 대꾸한다.
"사람 사는 곳 맞아? 모델 하우스 같은데."
애인은 이내 웃으면서 절반 정도 긍정한다. 그렇지만 이내 곧 반색하고 대꾸한다. 너무 이쁘지 않느냐고, 반드시 이렇게 살 거라고, 미래의 집을 담보로 보증이라도 할 기세다.
예쁜 삶이란,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같은 삶이겠구나.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심드렁하게 포스팅을, 유튜브를 넘겨보곤 하는 것이다.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책더미, 음악 CD 더미, 옷가지 더미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앉은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