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바라기와 꼰대

1일 1커밋 #46

by 김디트

친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나, 웹툰 그려보려고."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의 반응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친구는 늘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아마 친구가 세속적인 것에 조금 흥미가 덜했다면 이미 옛날에 그 꿈을 이룬 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친구는 요리사였다. 그것도 곧 퇴사를 앞둔 요리사.


퇴사를 앞두고 있으니까 당연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을 것이다. 나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었다.


"그래. 이제 곧 쉬니까, 시간도 많고."


친구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 눈치를 봤다.


"그렇지?"


그리고 이내 친구의 꿈 어린 이야기는 터진 댐을 밀어버리듯 터져 나왔다. 친구는 원래부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캐릭터였으니까.


친구의 계획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지엽적인 느낌이 강했다.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보기엔 그 작고 소소한 것들 모두가 그다지 즐거운 것들이 아니었다. 사실 단편 단편적인 요소로써는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마땅히 해야 할 것들. 매일 그리기, 학원 다니기 같은 것들. 친구가 이야기하는 톤과 뉘앙스만큼 신나고 즐거운 게 아닐 것만은 자명했다. 하지만 저렇게 즐거워 보이는데 괜히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로 산통을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난 마치 뒤라도 마려운 기분이었다.


나도 참 인내심이 부족하다. 친구가 자기가 그릴 만화의 세계관을 제법 장황하게 풀어 해설하기 시작할 때 그만 참지 못하고 내뱉고 말았다.


"근데, 뭐 그려본 거라도 있어?"


친구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의기양양한 건지 마음이 안 좋은지 모를 심정이 되고야 만다.


"아니, 일이 너무 바빠서. 몸이 피곤하니까 그런 걸 할 여유가 없어. 집에 가면 씻고 운동하고 자기 바쁘네."


"설정이라도 좀 디테일하게 구상해보지. 머릿속에만 있는 거는 아이디어일 뿐이잖아."


"응, 그렇네."


친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이어서 말한다.


"그래도 너무 피곤해서. 진짜 피곤하단 말이야."


나는 친구처럼 하루 종일 화기 앞에 서서 밥 먹을 틈도 없이 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차마 '나는 되던데?' 하는 따위의 막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노동이라는 게 같은 단어로 의례히 퉁 쳐지곤 하지만, 친구가 하는 것과 내가 하는 것은 정말 명백히 다른 일이었으니까. 그런 고강도의 업무를 매일같이 하다 보면 정말 뇌가 사용할 여분의 여력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뭔가 께름칙했다. 이 사이에 가시라도 걸린 느낌이었다.


친구는 나의 침묵을 묵시적인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음, 좀 꼰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친구의 말을 살짝 밀쳐내며 말을 끄집어냈다.


"어느 유명한 TA 분이 그러데. 늘 이런저런 멘토링을 받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을 받는다고. 그런데 그분은 그럼 이렇게 대답한데."


"뭐라고?"


"그럼 결과물을 먼저 가져와 보세요."


나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친구는 그렇구나, 하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고, 나는 마음 한편이 조금 쓰렸다.


사실 알고 있었다. 친구가 나에게 원했던 건 이런 하찮은 조언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이 꾸는 꿈을 함께 꿔주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꿈은 같이 꾸는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우니까. 망상을 나누면서 마치 그 망상이 현실에 구체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잠깐만은 꿈에 젖을 수 있었다.


나도 이따금 사람들을 모아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적이 있다. 프로젝트를 명목으로 여럿이 모여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큰 목표를 세우고 작은 줄기들을 세분화했다. 그 모임은 즐거웠다. 모두들 정열적으로 아이디어를 들고일어났고, 토론했고, 결론을 내렸다. 마치 정말 좋은 아이디어를 내세운 스타트업의 간부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카페를 점거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남들이 듣을세라 속삭였다. 그리고 결과는? 그 첫날 하루, 만나서 소곤거린 것이 유일하게 가시적으로 달성한 업적이 되었다. 다들 생업으로 돌아가자마자 프로젝트는 뒷전이 되었고 마치 어릴 적 친구와 나누었던 꿈처럼 어느새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친구도 그러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변명이 될까. 하지만 친구는 침울해했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조금 후회가 되는 마음이다.


22.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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