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의 화면에는 새로 오픈하는 골프 게임 관련 페이지가 열려 있었다. 그걸 본 난 이를 토대로 말문이나 터볼까 했다. 정말 사소한 일이라도 나누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나눠 가진 듯한 일체감이 느껴지니까. 벌써 꽤 오래 알아왔어도, 그럼에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던 터라. 마음에 맞는 사람도 찾기 어렵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맞춰지고 싶은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기회들을 잘 활용해야 했다.
"요새도 골프 게임 같은 게 잘 팔릴까요?"
회사 동료는 웃었다.
"음, 그래도 옛날에는 재밌게 했었는데요."
"언제요?"
"피쳐폰일 때."
회사 동료는 조금 민망한지 웃었다. 피쳐폰일 때라. 그때는 재미있었겠지. 골프뿐 아니라 뭐든 핸드폰에서 돌아가는 게임만 있다면 모두 즐겁게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재미란 사실 어떤 제약 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으로든 비물리적으로든. 나도 가슴속에 품고 있는 피쳐폰 시절의 게임 몇몇 개를 돌이켜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과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1학년쯤까지 피쳐폰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나의 경험은 대부분 그 시절과 단단히 엮여 있었다. 확장성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낸 코드처럼 어느 한쪽을 쉽게 걷어낼 수가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함께 꺼낼 수밖에 없었다. 알인가 홀인가 하는 요금제부터 시작해서 아이스테이션으로 대표되는 PMP 이야기까지. 엮인 구슬처럼 알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는데 회사 동료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왜 그럴까 하다가 이내 나의 실책을 알아차렸다. 세상이 전부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던 그 어린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뭐 이런 식으로 의기양양하던 나의 자존감은 또 쪼그라들고 만다. 이번에도 또 세상의 중심에 날 박아 넣고 또르르르르 지구본 회전시키듯 하고 말았구나. 회사 동료와 나의 나이차는 10살가량. 더군다나 우리 세대는 정말 쏜살같은 변화를 겪어온 터. 겨우 3년 남짓의 학창 시절의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 온 후의 바닥처럼 질척거렸다. 정말로 알, 홀 따위의 요금제를 모르나요? 회사 동료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저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겨우 네 살 차이 날 뿐인 애인도 잘 모른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겸허히 동료 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회사 동료는 MP3 이야기와 함께 본인의 친구들과 용산에 가서 강매를 당한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었다. 그 시절 악명이 아직까지 잔류하여 뭇사람들의 뾰족한 눈길을 받고 있는 용산의 이야기인지라 즐겁고 유쾌하게 호응할 순 있었지만 사실상 태생이 지방 사람인지라 회사 동료의 '그 옛날 용산' 하는 아련한 눈빛을 완전히 따라잡을 순 없었다. 나에게 용산은 '가끔 게임 잡지에 나오던 랜드마크', '서울에 가면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장소' 정도의 의미일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의미마저도 퇴색되었다.
회사 동료의 눈이 반짝거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이야기를 할 때 눈을 반짝인다. 담배를 피울 때 꼭 나한테 같이 가자고 징징거리는 또 다른 회사 동료는 회사 옥상에서 그 즐기는 담배조차 피우는 둥 마는 둥 하며 군대 이야기에 수분이나 시간을 들였다. 자신이 상병 말에 분대장을 달았는데 하필 꼭 늘 열외를 하는 고문관이 있었더라는, 이름과 계급과 연대만 다르게 변주되는 딱 그런 군대 이야기였는데 그런 진부함 덩어리 이야기를 하면서도 회사 동료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신이 났다. 상대의 흥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새삼스럽게 나도 흥이 난다. 군대 이야기, 옛날이야기, 그 모든 시대를 나도 통과해 왔던 터라, 그 진부한 이야기들 속에서는 늘 나의 과거를 찾을 수 있다. 나도 내가 겪은 옛날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그리고 가끔 토핑처럼 끼얹으며 눈을 반짝이곤 하는 것이다.
아마 자주 옛날이야기를 쓰고 읽고 떠올리는 나도 곧잘 눈을 반짝이겠지. 기회가 된다면 애인에게 사소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몰래 사진 찍어달라고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나는 골프 게임의 페이지를 종료하는 동료의 눈빛을 잠깐 바라보았다. 나도 다시 업무로 정신을 복귀시키기 위해 부산히 주변과 컴퓨터 화면을 정리했다.
22. 0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