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기 싫어 싫어 하면서도

1일 1커밋 #48

by 김디트

밖에 나가지 못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주말 내내 밖을 전전하다가 그러다가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밤샘을 해버리고야 만다거나, 오늘은 집에만 있어서 우울하다고 고충을 토로한다거나. 사람을 사귀는데도 취향과 생활 패턴 같은 게 깊은 영향을 줬던 모양인지라 내 주변에는 도통 외향적인 사람이 없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을 뿐. 마치 환상 속 동물 유니콘에게 그러는 것처럼, 정말 뿔이 달려 있다고?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그런 사람들은 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힘들다는 것엔 여러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중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로 풀이를 자면 개인 행동반경의 단축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멀리는 해외, 가깝게는 확진자가 발생한 동네, 원래라면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던 곳들이 이젠 그렇지가 않아졌으니. 갈 수 있는 장소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그래서 힘드냐, 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조금 쭈뼛거리고 말 테지. 나처럼 내향적이고 집 안에 박혀있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애인은 고개를 저으며 너처럼 집돌이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나와 같이 하루 종일 실컷 게임하고, 편의점 과자와 라면을 실컷 흡입하고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후였다. 그런 만족감 가득한 얼굴로 너처럼 집돌이는 없다고 하는 애인의 모습에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지금까지 실컷 즐긴 사람이 말이야. 하지만 애인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본인은 내가 좋아하니까 같이 어울려준 것뿐이란다. 자신은 나가는 것을 즐긴다고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나는 웃음으로 대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애인이 나보다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었다. 늘 데이트 코스는 애인의 몫이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건져 올린 좋은 장소들을 이따금 대화방에 올리며 여긴 어때? 저긴 어때? 자주 물어왔다. 이전엔 흘끗 애인의 휴대폰 갤러리를 훔쳐봤더니 수업 자료로 쓸 것들 사이사이로 카페, 편집샵 같은 게 수없이 캡쳐되어 우글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모았는데 왜 우린 늘 가던 곳으로만 가게 되는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말을 꺼냈다가 데이트 코스를 짜는데 드는 노동 강도와 나의 무심함에 대한 길고 긴 성토를 들을 것만 같아서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사람이란 게 단순한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향적인' 같은 일견 명확해 보이는 표현조차 나에게 곧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불합리함을 느낀다. 나는 분명 내향적일 텐데. 사람들은 '네가?' 하며 물음표를 띄운다. 실제로 나는 모임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지만 모임에 나가서 노는 것은 좋아한다. 사람들은 모임에 나가서 노는 나만 보니까 나가는 걸 싫어하는 나에 대해서 잘 모를 수밖에. 미묘한 차이일 수 있으니까 단적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예컨대 주말에 친구와 약속이 잡혔다고 하면 나는 나가기 싫어서 몸부림친다. 애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럼 가지 마라미, 따위의 말을 하곤 했지만 어른이란 싫은 일도 기꺼이 해야 했다. 나는 몸을 베베 꼬며 시간에 맞춰서 밖으로 나간다. 친구와 만난다. 그러면 그 이전, 만나기 전까지 베베 꼬던 몸이 어느새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해진다. 나는 신이 나서 재잘거리며 농담을 날리고 웃음을 쏘고 박수를 친다. 사실 나라도 그렇게 팽팽한 나의 모습을 두고 내향적이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내 원래 모습은 내향적인 쪽이다. 외향적인 쪽은 페르소나에 가깝다. 꾸며내는 걸 평생에 걸쳐 학습한 결과라고나 할까. 그 순간에는 나마저도 진심으로 속여버리는 외향성. 애인은 그런 나의 모습을 '사회생활을 한다'고 일축해 주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할 때는 '똥꼬를 빤다'라고 할 때도 있고. 애인은 본인은 힘들어서 도저히 너처럼은 못하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애인이 업무적 통화를 할 때 어떤 목소리가 되는지 들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반응이지만. 애인도 나와 비슷한 결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내향적인 사람. 애인은 이어서 이야기했다. 상대방에게 맞추다 보면 진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힘든 게 당연하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그치. 힘든 일이지, 사람을 만난다는 건. 밖으로 나간다는 건.


하루는 홍대, 사람이 우글거리는 거리를 통과하고 나서 애인이 꺄르르르 웃으며 말했다.


"얼굴이 쩔었네."


거울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기운이 쪽 빠져나간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저 사람 무리를 한 차례 통과했을 뿐인데 내 안에서 뭔가가 흩어져 버린다니. 내심 억울했다. 그놈의 도둑놈을 붙잡기만 하면 내 일생 잃어버린 기운을 토해내라고 마구 볼기를 때려줘야지 같은 생각을 하며 애인의 손을 꼭 잡고 얼른 이 장소를 벗어나자고 채근했다.


22.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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