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지만 조식은 못 먹었다

1일 1커밋 #49

by 김디트

김영하 님은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라는 글에서 집을 놔두고 굳이 호텔로 가서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수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서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원인은 바로 김영하 님의 이 문장에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컴퓨터, 책, 스피커 등이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나만의 질서대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나의 방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쌓인 물건 수만큼이나 쌓여 있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함에도 나는 5:5의 비율을 맞춰서 회사에 나가려고 하는 편이다. 집이 여러모로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일어나서 바로 업무에 착수할 수 있다거나 하루 종일 안 씻어도 된다거나 굳이 이어폰을 쓰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배경음악을 빵빵하게 취사선택하여 켜 둘 수 있다는 점 같은 것들. 하지만 편리하다고 능률적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나의 마음가짐이. 김영하 님이 말한 것처럼 '기억이 소거되지 않은' 장소는 끊임없이 쌓인 기억들을 방출한다. 그 기억들은 주로 주말에 쌓인 것들로 주로 나태하고 편안한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TV를 본다, 게임을 한다, 낮잠을 잔다 같은 것들. 업무 시간과 도저히 아귀가 맞지 않는 기억들이 자꾸 내 주위를 얼쩡거리며 시선을 유도한다. 자칫 긴장을 풀면 그 기억들은 금방 나를 덮쳐버리고 만다. 그러니 기억들에 완전히 잠식되어 업무에 큰 지장을 초래하기 전에 회사에 나가는 걸 선택해서 업무적 기분을 환기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주말에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볼까 하는 나의 발전적인 사고에도 큰 지장을 미친다. 퇴적되어 있는 기억에 그대로 깔린 채로 주말을 나버리기가 일쑤다. 가끔 성공적으로 나태함을 물리치는 일도 있다. 반 정도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집에서 튀어나와 카페나 도서관 같은 곳을 전전함으로써 이뤄낸 성취이므로. 아무튼 퇴각도 전략이라고 했으니.


요는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집은 내가 뭘 하기에 좋은 분위기가 아닌 거다. 앞서 김영하 님이 말한 그 쌓인 '기억', '상처를 흡수한 물건들' 때문에. 김영하 님 같은 사람도 호텔로 대피하는 판국이다. 집의 입장에서 나의 반항 같은 건 소소한 해프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옛 어른들의 '학교 분위기가 중요하다'느니 '친구를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닌 모양이다. 그 말 뒤편에 깔린 혐오성 짙은 뉘앙스를 잘 걸러서 들어야 하겠지만.


나와 애인은 새로운 곳을 즐기는 건 좋아하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늘 그곳에 가기까지가 고충이다. 이번엔 여기로 가보자, 하고 아침 어귀에 큰 결심이라도 하듯 서로를 다독이다가도 결국 모종의 이유(대부분은 귀찮음이다)로 인해 늘 가던 곳으로 발길이 향하게 되는 것이다. 늘 가던 곳들에도 마치 발자국처럼 우리의 기억들이 쌓여 있다. 우리는 늘 같은 행동과 같은 농담을 읊으면서 서서히 타성에 젖어 들어 간다. 그렇게 힘겹고도 거친 기억들에 휩쓸리듯 데이트를 이어나가다 보면 어느 쯤에 한번 정도 리프래시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때가 바로 김영하 님이 활용한 방법을 택할 때이다.


그러니까, 바로 호캉스.


우리의 호캉스의 역사는 제법 유구하다. 호캉스라는 단어가 채 유행하기 전부터 즐겨왔다. 애인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늘 방학이 있었다. 방학 때면 부산으로 내려가서 1주, 2주 정도 머물다 오곤 했는데 그 덕분에 나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부산으로 내려갔다. 사회 초년생이던 7년 전에는 정말 눈물겹게 가난했기 때문에 찜질방을 전전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돈과 건강이 반비례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찜질방은 호텔로 급격히 격을 올렸다. 그렇다곤 해도 비즈니스호텔일 뿐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길로 정리된 방에 몸을 던지는 기분은 흡사 하얀 도화지에 데칼코마니를 위해 마구 물감을 뿌리는 것과 비슷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이불의 위치를 기상천외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스툴도 제멋대로 위치를 옮기고, 과자 부스러기나 라면 국물 조금 흘리는 것에도 괘념치 않았다. 음악을 크게 틀고 거의 헐벗은 상태로 거의 날것의 컨텐츠들을 누렸다. 그러다 가끔 밤공기를 맡고 싶을 때면 옷을 여미고 밖으로 나가 바닷가를 걷거나 돼지 국밥을 말아먹거나 편의점을 가거나 했다. 그러다 얼른 호텔방으로 들어와서는 창문을 열고 밖을 배회하며 옷깃을 여미는 커플들을 보며 뿌듯해했다. 그러면서 애인과 '너희들은 곧 저 인파들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가겠구나. 우린 안 그래도 되지롱.'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곤 했던 것이다. 몇 미터 차이도 나지 않는 곳에 있는 그 인파와 우리의 차이, 그건 오롯이 호텔이 제공해주는 혜택이었다.


그렇게 모든 컨텐츠를 소모한 우리는 침대에서 조금 더 밍기적거린다. 그러다가 곧 내가 준비해온 영화를 TV에 연결한다. 영화를 모두 시청하면 우리의 호캉스는 대단원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텔에서 보는 영화는 대부분 잔잔하고 여운이 긴 것들. '화양연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같은 것들. 우리는 가만히 입을 닫고 묵묵히 화면을 견딘다. 호텔이 홍콩이 되었다가 이탈리아가 되었다가 프랑스가 되었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 따위를 잔뜩 품은 채 다음 날 아침의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곤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침에 특히 게으른 우리에게는 조식을 먹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점이다. 애인은 조식 같은 거 안 먹으면 어때, 하는 생각인 것 같지만.


22.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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