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50
자세 따위 뭔 상관이야. 내가 편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하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주로 고등학생 때 했던 생각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본분이었다 보니 그만큼 지적을 받을 일도 많았던 것이다. 얄팍한 지식 위에 세워진 기준이라도 자신의 기준이 있다면 그걸 남에게 대보고 싶은 게 사람이었던 거다. 어느 TV 프로에서 봤는데,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는데, 제각기 기준을 가지고 나의 본분에 자를 들이밀었다. 은근히 고집이 센 나는 그래서 위와 같은 생각을 더 깊고 꾸준히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의 본분은 앉아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상당히 고민을 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앉아 있는 게 일은 아니지, 하고 대응하겠지만 역시나 반쯤은 맞는 말이기 때문에 대응 전의 정적이 상당히 길 것이다. 아무튼 학생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이가 있다. 그건 바로 몸. 신체. 건강.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앉는 걸 본분으로 삼아왔다 보니 신체는 올바르지 않은 형태로 미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척추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느낌, 경추가 조금 앞으로 돌출된 느낌. 이제는 절대로 고등학생 때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이제는 옛날처럼 침대에 누운 채로 밤새서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등받이가 없는 곳에 앉으면 허리 중간 부분이 욱신거린다. 등받이가 있더라도 목 받침대가 없는 의자에 앉으면 경추가 뻐근해진다. 나름대로 괜찮은 자세를 취하며 책이든 컴퓨터든 게임이든 시작하지만 집중력은 그 모든 것을 흩트려 놓기 십상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왠지 몸이 찌뿌둥함을 느낄 때쯤의 내 자세를 돌이켜보면 마치 직화로 구운 오징어와 흡사했다. 그럴 때면 불안감의 화력이 솟아오르며 오징어 탄내에 콧잔등을 찌푸리고야 만다.
결핍이 찾아들면 필연적으로 그 결핍을 메우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나는 마치 도라에몽이 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듯이 인터넷을 뒤적거린다. 경추에 좋은 마사지볼, 자세 교정에 좋은 커블 체어 따위를 쉴 새 없이 검색하다 보면 어느새 네이버 최저가를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핍은 새로운 걸 사서 채워 넣어야 비로소 채워지는 것일 테지. 그런 합리화를 거듭하며 마치 지갑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굴어버린다.
그래서 그 각개의 아이템들이 나의 결핍을 막아주느냐 하면, 글쎄. 아마 다들 겪어봐서 이미 알고 있는 엔딩이 아닌가. 그렇게 구매한 아이템들은 눈에 띄는 곳에 장식되어 있다가 점차 구석으로 밀려난다.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는 방 정리를 할 때쯤이 되어서야 아, 이런 것도 샀었지. 하면서 먼지 가득 쌓인 그 아이템을 향수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내 역시 싸구려란, 하면서 고개를 저으며 구석으로 다시 집어던져 버린다.
사실 정말 필요한 건 나의 의지겠지만. 하지만 수십 년간 쌓아온 나의 습관을 이따금 빨간 불이 들어오는 자동차 경고등 같은, 이따금 비주얼 스튜디오 출력 단에 나타나는 경고 같은 것들로 쉽게 막아 세울 수는 없었다. 애초에 바꾸는 게 쉬우면 습관이라고도 안 할 테고. 난 이 글을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아차, 자세. 경각심을 애써 불러일으키며 허리와 어깨를 펴고 턱을 당겨야 했다.
자. 그래서 이제 어쩐다.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이대로 집중하기 시작하면 내 자세는 흐트러질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자세를 경계하며 진행하자니 집중이 안 되어서 그럴듯한 아웃풋이 나오질 않으니.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면, 나는 또 초록색 창을 켜서 자세 교정 아이템의 상세한 리뷰를 찾아보기 시작하고야 마는 것이다.
21. 0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