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커밋#51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다가 사고라도 난 기분이었다. 박살이 난 보닛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면서 하얗게 비어버린 머리를 싸매고 또 싸맸다. 완벽하게 박살난 자동차는 어떻게라도 해볼 여지를 주지 않았다. 털썩 주저앉아서 도피하듯 인터넷이며 게임이며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근 이 주일간 그런 시간을 보냈다. 안 좋은 일들은 나에게 딱히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오른손이 골절 되었고, 가지고 있던 주식들이 전부 다 나락으로 떨어졌고, 눈여겨보던 부동산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고, 갑작스럽게 가벼운 차 사고가 났다. 외부의 스트레스에 지극히 취약한 사람으로서 이번엔 정말 버틸 수가 없었다. 단단하게 다져온 내 발 밑이 바사삭 소리와 함께 부서졌고, 나는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말이다.
의무적으로 회사일을 처리하고 지쳐 흔들리는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선 소파에 몸을 뉘인 채 끊임없이 게임을 탐닉했다. 게임이 아니라면 인터넷. 인터넷이 아니라면? 다시 게임. 현실로 눈을 돌리기가 무서워서 끊임없이 게임과 인터넷 사이를 방황했다. 플래너는 보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에 가방 속에서 꺼낼 생각도 못했다.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있으니까. 하는 간편한 핑계도 마침 있었고 말이다.
쳇바퀴 같던 본래의 삶에서 튕겨져 나온 덕분에 시간은 썩어 넘칠 만큼 많았다. 그 덕에 미뤄뒀던 영화를 많이 봤다. 미성년, 밀양, 콘택트, 끝없는 이야기, 완벽한 타인, 시대를 넘나들며 이야기들 사이를 거닐었다. 이야기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모티베이션을 찾아내겠다, 뭐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핑계일 뿐이었지만. 자동차 사고가 난 후에는 '보험사를 불러 수습을 하고', '다른 탈 것을 타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방법을 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라톤 선수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달리기로 여길 떠야지 하는 생각 같은 걸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시간은 흘렀다. 도라에몽의 오른손 같던 것이 조금 부기가 빠져서 정상적인 손처럼 보일 정도의 시간은 흘렀다. 오늘은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X-ray 사진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치유 과정에서 중수골이 단축되었네요."
이대로 몇 주 있으면 주먹을 쥘 때 너클이 함몰되어 미관상 좋지 않을 것이라고 이어 말했다.
"지금이라면 수술을 통해 뼈를 끌어올리고 골반뼈를 조금 잘라 채워 넣으면 복구할 수 있어요."
나는 심장이 덜컥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수술 이야기는 없었다. 그야 그때는 내 넷째 손가락 중수골이 지금처럼 눈에 띌 만큼 짧지 않았다. 나는 X-ray 사진을 꼼꼼히 바라보았다. 넷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의 중수골이 줄이라도 선 것처럼 높이가 같았다. 넷째 손가락도 전진하길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수술 안 하면 악력이라거나 기능상 문제가 있을까요?"
"아뇨 그렇진 않은데, 하지만 수술은 지금을 놓치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군요."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의사 선생님도 나의 표정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서 가족과 이야기를 해보시죠."
그래서 나는 찝찝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무튼 이로써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늘은 셈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지금이 아니면 수술로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동생은 '나 같으면 수술 안 한다'고 했고, 애인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렇지. 역시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슨 이유일지 의사 선생님의 말을 먼지처럼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말끔해지지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지금이 아니면' 하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그 말만 없었다면 이런 고민도 없었을 텐데. 쉽고 말끔히 수술을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정말 이상하게도 글이 쓰고 싶었다.
21. 03.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