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선택의 앞에 설 때가 있을 것이고, 나도 그렇다. 사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렇다면 내 삶은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못생긴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눈부시게 아름답진 않을 것이다.
정말 많은 선택을 해왔다. 아침을 먹을지 말지, 운동을 할지 말지 같은 미시적인 것부터 프로그래머가 될지 말지 같은 거시적인 것까지 조잡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수많은 선택을 밟으면서 앞으로 걸어왔다. 내가 해온 그 기억나지 않는 많은 선택들이 발자국처럼 내 뒤를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 매우 불만이다.
선택은 그 행동의 주체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는 그렇지 않은 선택들이 너무나 많았다. 대학교 때. 나는 대학교 OT 때 처음 안면을 튼 친구와 어떻게 이야기가 잘 되어 원룸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내 최초의 출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그 시작점마저도 혼자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뭐랄까 나의 성격에 딱 맞는 시작이 아니었나 싶으면서.
그 시절 내린 많은 선택들은 그 친구, 내 인생 처음의 룸메이트의 것과 닮았었다. 아니, 거의 빼다 박은 것이 여럿이었다. 수업 시간표, 리포트, 저녁에 먹는 야식, 즐겨하는 게임, 좋아하는 영화 같은 것들. 친구의 삶 일부분을 복사해서 그대로 나에게 붙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밀려오는 선택들에 치여 골머리를 앓느니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이 편했다. 내가 유일하게 선택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남의 선택을 선택하기.
편하긴 편했다. 이미 내린 선택은 무를 수가 없는 데다가 너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과화되기 때문에 명확하게 어떤 선택이 문제를 일으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디버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택할 그 당시의 편함만을 추구하는 게 그리 가성비가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삶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그렇지 않느냐고 하면 그렇지가 않지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사람의 본질이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남에게 선택을 외주 주는 상황은 지금도 굉장히 빈번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삶 같지 않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새 게임 업계에는 유독 뜨거운 이슈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넥슨의 연봉 인상. 그리고 그에 호응하는 많은 게임 회사들. 사실 돈을 준다고 하는데 기분 나쁠 사람은 많지 않다. 수많은 직원들은 금융 치료니 뭐니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받은 사람들은 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노비도 대감집 노비여야 한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렇게 소규모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신세를 받아들였다. 마치 카트라이더에서 난 아직 결승선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1등은 결승선을 넘어서 카운트가 5, 4, 3, 2, 1 하고 흘러갈 때 그러듯이 일찌감치 손을 떼 버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는 사람, 그런 상황이라면 손을 떼고 깔끔하게 포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조금만 하면 완주가 가능할지도. 그런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우리 회사 사원들도 그런 상황이었다. 우리도 대감집인데 뭔가 떨어지는 게 있겠지 하는 마음. 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 다른 회사들이 하나둘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할 때마다 사람들은 점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우리 회사 좋아'라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들 이를 갈며 손을 떨었다. 당장에라도 퇴사를 하겠다며 가슴을 두드렸다.
저번 주까지는 해당 소재를 농담으로만 소비하던 한 팀원분은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 화나다가도 막상 코딩을 시작하면 깨끗이 잊고 재밌다고 코딩하는 게 너무 짜증 나."
농담거리는 어느새 정말 화나는 일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러게 그 옛날부터 일 재밌어하지만 말고 열정 페이를 뿌리 뽑았어야죠!"
"야, 나 그 세대는 아니야!"
팀원은 웃었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 무관하지 않았다. 저번 주 까지만 해도 사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주가 되면서 급격하게 많은 사람들의 그 은연중의 분노에 휩쓸려서 조용히 솟아오르는 분노를 으르렁거리는 강아지 등 쓰다듬듯이 삭혀야 했다. 마치 남들처럼 분노하지 않으면, 그리고 남들처럼 이직을 생각하지 않으면 영영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라도 입을 것처럼. 그래도 그 상처를 어루만지면서도 안심했다. 분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심한 열정 페이들의 마음에도 공통된 분노가 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게 비록 냄비 근성에 가까운 군중 심리로 마감될지도 모르는 것일지라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는 이번에도 또다시 타인의 선택의 뒤로 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선택이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권익에 반하는 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늘 했던 것처럼 어떤 결과가 일어났는지도 모를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변화될 미래에 가까운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니 다른 사람들의 선택도 그와 가까웠으면 좋겠다. 소심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21. 03.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