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 특별해야 할까

1일1커밋#53

by 김디트

얼마 전 아빠의 생일이었다. 아빠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은 접어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은 했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바로 전날 엄마가 언질을 해주었음에도 말이다. 조금 미안하면서 조금 억울하고 뭐 그랬다. 그래도 조금 미안한 감정이 더 앞섰기에 새벽 늦게나마 선물하기 버튼을 눌러서 홍삼 세트를 보내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야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평소에는 정말 서로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굴면서 왜 특별한 날에는 그 관계가 특별한 것인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걸까. 가족과 유교적 문화가 결합된 그 형태는 아직까지도 참 기묘하기만 하다. 거기에 아직 얽매여서 선물하기 버튼을 누르는 나도 참 그렇고. 나도 옛날에는 그런 무관심과 히스테리에 노출되면서도 '사랑해서' 그런다고 여길 순진함, 아니 무지함이 있었다. 차라리 무지한 것이 삶을 더 간단하게 사는 비결이 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처지는 동생도 다르지 않아서, 동생은 다음날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빠한테 전화 못 했다'라고 나에게 고백했다. 나도 허탈하게 웃으면서 동질감을 표했다. 그리고 선물로 대충 대체했다고 하니 동생은 자신도 그래야겠다며 자신의 방으로 다시 쏙 들어갔다.


옛날의 나는 우리 가족이 참 돈독하다고 생각했다. 그야 엄마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는 아빠의 폭정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 일이 없었으니까. 아빠는 빈번하게 집에 없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안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의 유무는 담배 연기의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사실 담배 연기가 아빠의 존재가치의 전부였다. 냄새만 걷어내면 아빠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난 아빠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에 점차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와는 관계가 좋기만 했으니까 나는 우리 가족을 돈독하다고 정의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후일 내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엄마는 전화로 고백했다. 그 시절의 아빠는 생활비도 제대로 가져다주지 않고 밖을 전전했으며 우리 교육비 같은 건 모두 엄마의 노동에서 나온 것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쓰는 그 모든 것들에 뾰족하고 모난 눈을 했다는 것. 그 사실에 깨달았다. 담배 연기는 참 몸에 좋지 않은 것이었지. 왜 그런 당연한 걸 몰랐을까.


인터넷에 '가족 톡방'을 주제로 한 대화짤 같은 것을 보며 자주 깔깔거렸다. 가족 간의 유대가 시대의 엇나감과 잘 버무려진 부류들이었다. 그런데 그저 유머로만 소비하다 보니 몰랐는데 알고 보니 거기엔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톡방이 없었다. 얼마 전 친구가 가족 톡방에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선 그제야 '아, 우리는 가족 톡방이 없구나' 깨달았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심정으로 되새겨 보았다. '왜 없을까'에서 시작한 시뮬레이션은 '없는 게 좋겠다'는 결론으로 끝났고 말이다. 아마 우리 가족에게 톡방이 생기면 하루 만에 죽은 톡방이 되고 말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함께 나눌 무언가가 없었다. 그러니까, 행복한 과거 말이다.


사실 관계라는 게 과거만으로 간단하게 유지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아빠의 생일로 한 번 홍역을 치르고 난 후(아빠의 뒤끝을 정리한 엄마의 길고 긴 하소연이 있었다) 난 그제서야 올해 뭔가를 빠뜨리고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절친의 생일! 나는 놀라서 얼른 달력을 펼쳤다. 3주는 너끈히 지나 있었다. 내 절친 무리는 총합 셋이었기에 나만 안 챙긴 게 아닌 것이다. 우리 둘 다 그 하나의 생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나간 것이다. 난 당장에라도 나머지 하나에게 '왜 친구의 생일도 안 챙기느냐'고 버럭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을 들었던 손은 이내 살짝 기울어졌다. 우리가 떨어져 지낸 시간은 너무 길었다. 이번해 정도는 그냥 지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질 만큼 길었다. 결국 난 그 깊고 돈독한 과거를 두고도 친구에게 사과하고 또 다른 친구에게 버럭 할 수 없었다. 관계란 이렇게 무심하게 재정립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관계의 재정립이 가능하다. 뭐, 그렇다곤 해도 아빠와 나, 크게는 우리 가족 사이의 관계가 재정립되기란 요원해 보인다. 기존의 관계를 깨기 위한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할 텐데, 아빠는 그런 계기를 위한 노력을 할 위인이 아닌 게 분명하니까. 아마 어떤 계기가 생긴다면 아빠의 몸에 큰 이상이 생겨서가 아닐까. 그런 음울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21. 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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