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면 감천 이랬는데 하필 두피가 지성
1일1커밋#55
아 정말 귀찮다. 정말 정말 귀찮다. 주말 아침이면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소파에 앉곤 한다. 귀찮은 건 별 다른 게 아니라 씻는 것. 그중에서도 머리 감기. 잠깐만 앉았다가 감아야겠다 하면서 TV를 켜는 순간 그 날은 머리 다 감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평일 아침에는 습관적으로 잘도 하는 것들이 왜 주말만 다가오면 너무 귀찮은 일이 되는 걸까. 그렇게 머리 감는 걸 패스한 날, 밤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머리는 마치 누가 정수리 위로 식용유 한통을 쏟아부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번들거린다. 머리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어 있다. 대체 이 많은 기름들은 어디서 나온 거며 왜 나오는 것일까. 대체 무엇으로부터 뭘 보호하기 위해서. 오히려 보호되어야 할 것은 기름막 아래에 갇혀 숨 막혀 죽어가는 모공들 같은데.
같은 주말이라도 애인이 자고 가는 날에는 조금 다르다. 다르다는 게 긍정적으로 다를 수도 부정적으로 다를 수도 있는데, 요새는 꽤 자주 부정적으로 다른 적이 많은 것 같다. 우선 애인이 온 날엔 일찍 일어나는 것조차 힘겹다. 애인과 자면 왠지 노곤 노곤해서 침대 위에서 더 오래도록 뒹굴거리게 된다. 이불이 마치 꽉 닫힌 조개 주둥이 같아서 참 벌리고 기어 나오기가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 브레이크 타임이 간당간당할 쯤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키는 것이 다반사. 결국 머리를 감고 말고 할 틈도 없이 모자를 눌러쓰고 시간 맞춰 밥을 먹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번들거리는 얼굴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음식점으로 달려가곤 한다.
지성이 뛰어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많은 머리 부위 중 두피만 지성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식당에 앉아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얼굴이 잘 닦은 조약돌처럼 반짝거리는 애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애인도 참 엄청난 지성인인지라 과연 기름이 없는 삶은 어떨까, 함께 동병상련 촉촉한 눈망울로 서로를 바라보곤 한다. 뭐, 이제는 너무 자주 그런 몰골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 보니 부끄러움이 많이 사라지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트위터에서 어떤 샴푸에 대한 정보를 읽게 된다.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샴푸, 지성이 아닌 사람은 이런 삶을 살고 있었냐며 혀를 내두르게 된다는 샴푸! 눈이 번뜩 뜨인 나는 눈썹이 휘날리게 타이핑하여 그 정보를 애인에게 전달했다. 이거 어때! 하지만 애인은 내 예상관 다르게 굉장히 심드렁했다. 굉장히 굉장히 심드렁해서 나는 의아했다. 떡진 머리에 대해 분노를 퍼붓던 애인이었는데.
"미역 냄새나면 어떡해?!"
나는 그제야 샴푸 앞에 적힌 단어를 읽는다. '미역' 샴푸라고. '미역'. 음. 조금 미묘하긴 하네.
애인은 이렇게 덧붙인다.
"그래서 학교 애들이 놀리면 어떡해?!"
교사는 참 섬세해야 하는 직업이구나. 한낱 샴푸 냄새까지 진중히 고려하며 살아야 한다니. 그래서 그럼 안 쓸 거냐고 하니 애인은 곧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내가 먼저 써보라는 것이다. 냄새가 어떤지 확인하고 난 후에야 본인이 쓰겠다고 당당하고 뚜렷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를 뀌면서 그럼 이번 주말에 사서 써볼 테니 우리 집으로 하룻밤 자러 오라고 딜을 제시했고, 애인은 그 냉큼 그 딜을 접수했다.
그런 이유로 애인과 나는 올리브영에서 오늘 그 화제의 미역 샴푸를 구매했다. 미역 샴푸의 예상치 못한 작은 사이즈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만큼 신용도가 올랐다. 이 가격에 이 사이즈면 분명히 효과가 있다! 우리는 샴푸를 어기야 둥둥 업듯이 들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래서 과연 어떨까. 내일 나의 두피의 상태는, 향기는, 애인의 표정은 어떨까. 뭐 그런 것들을 기대하는 중이다. 지성이면 감천 이랬는데. 근데 꼭 지성이라고 해서 감천이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지.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작고 조그맣고 귀여운 샴푸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