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있다간 우울증이 올 것 같아서

1일 1커밋 #56

by 김디트

이대로 누워있기만 하자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말 그대로였다. 머리가 가스레인지 위에서 팔팔 끓어가는 주전자가 뚜껑을 달그락달그락 거리듯이 펄펄 끓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아마 펑하고 터지겠지. 근데 뭐, 괜찮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으로 누워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시간이 내 몸 위를 꾸물거리면서 지나갔고, 그 기분이 생경하고 불쾌했다. 메쓰꺼웠다. 괜찮을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책이라도 읽을까 해서 몇 장 넘겨 보지만, 활자가 도저히 와 닿지가 않는다. 옛날에는 닭살이 돋을 정도로 생생했던 그 글자들이 이제는 활력을 잃고 종이 위의 얼룩처럼 축 쓰러져 있었다.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그 시간을 견디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뭐라도 하고 있다, 그렇게 뇌를 속이기에 핸드폰만큼 적절한 것은 없었고, 과연 그랬다. 분 단위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안 하고 있는지 망각시키기에는 핸드폰의 스낵 컬처만큼 좋은 게 없다. 나는 인터넷 자경단이라도 된 것처럼 뒷짐 지고 이곳저곳 들쑤셨다. 이놈은 새로운 놈인데. 모자를 푹 눌러쓴 군 조교의 엄숙함으로 슬쩍 링크를 들춘다. 깔깔 웃다가도 순간순간 내가 뭘 안 하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생생했지만 뭐, 다시 다른 링크를 들쑤시면 되는 일이었다.


'삶에 의욕이 없고 흥미가 없어요.'


내 삶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로 나의 상황을 검색해 보았다. 인터넷은 나에게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나는 찬찬히 글을 읽었다. 증후군에 속하는 증상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대부분에 내가 포함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번아웃 증후군이 맞겠거니 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문득 궁금하여 번아웃 증후군 갤러리라는 곳에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갤러리에는 세상의 모든 우환들이 모여 있었다. 동질감은 세상을 헤쳐나갈 힘을 주기도 하지만, 앞으로 전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우울한 증거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검은 구름을 머리 위에 하나씩이고 각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제리코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불량품들의 모습이 언뜻 뇌리를 스쳤고, 나는 구토가 나올 것 같아서 얼른 갤러리를 튀어나와야 했다.


아무튼 이를 어쩐다 하는 심정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라도 빠진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가졌을 정신병에 대한 온갖 편견들이 뇌리를 스쳤고 그래서 죄책감이 깊어졌다. 그 정도는 그냥 버티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었다. 나는 소파 깊숙이 파묻히면서 끙끙 앓았다. 아마 항우울제라도 있었으면 금세 한 알 털어 넣고 말았을 것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렇게 있다간 정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겠다 싶은 지점에 다달아서야 나는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후끈하게 한 후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의 날씨는 맑음. 따뜻함.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 마스크를 단단히 챙겨 끼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으로 나섰다. 삶에 의욕이 있고 흥미가 넘치던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간만에 산책을 나섰다. 그 시절처럼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면서 갑작스레 만나는 새로운 곳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이며 나의 이 좁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삶들을 곁눈질하러 신발을 동여맸다.


그래서 간 카페의 모카포트로 만든 시그니쳐 메뉴는 제법 신선했고,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삶은 밝았으며, 일요일에도 손님을 위해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의 얼굴은 해맑았다. 그런 면면을 보고 있자니, 대체 왜 그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집안에만 갇혀 있었는지, 왜 그렇게 우울함 속으로 침잠해 가기만 했는지, 겨우 한 시간 전의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성이면 감천 이랬는데 하필 두피가 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