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쉬움'으로 게임 즐기기

1일1커밋#66

by 김디트

지금 돌이켜봐도 난 평생 동안 매니아적인 기질이 없었다. 나의 '푹 빠지는' 기준선은 너무 낮았다. 극단적으로는 첫인상이 좋았다. 혹은 있어 보여서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니까 좋았다. 전부 그가 가지는 어떤 뉘앙스를 좋아했던 것이지, 그 사소한 디테일을 쫓으면서 좋아했던 적은 없는 것이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취미를 겸하여 빈번히 게임을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나의 그 부족한 매니아적 기질의 민낯이 드러난다. 한낱 게임일지라도 사람마다 즐기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컨트롤의 맛을 좋아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장비와 아이템의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에서 희열을 느낄 것이고. 나의 경우는 어떤 경우냐면, 그냥 흐르는 대로 받아들이는 걸 좋아한다. 내가 애써 뭔가를 찾아내지 않아도 되는 것. 그냥 대충 커맨드를 입력해도 적들을 마구 벨 수 있는 것. 다음 이야기를 최대한 빠르게 볼 수 있는 것. 최소한의 커맨드와 시간으로 내용들을 섭렵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게임의 작은 요소들에 파고드는 것은 정말이지 나의 취향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적을 공략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 이 스테이지를 해결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은 한낱 스트레스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제일 쉬운 모드를 선택하고 차근차근 스토리를 깨는 맛으로, 기괴하게 뒤틀린 포즈로 소파에 누운 듯 앉아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면 그런 회고의 마음이 들곤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좋아하는 것에 완벽히 빠져들지 못할까?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왜 부분적이고 디테일한 것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아마 이런 면이 나의 가장 큰 약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게임 컨트롤러를 쥔 손에 힘을 주게 된다.


그런 집중력. 매니아적인 기질. 어떻게 보면 집착. 나는 평생을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아왔다. 그 옛날, 게임의 엔딩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던 시절의 나는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들을 공략하고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뿌듯해하고 그러다가 끝끝내 게임의 엔딩을 보고야 마는 친구들의 등을 쓸쓸하게 바라보곤 했다. 아마 나는 그런 방식,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기 때문에 대부분 '쟤랑 나는 다르니까.', '편하게 쟤가 풀어주는 걸 받아 쓰기만 하면 되는 내가 더 이득이지 않나?' 같은 정신 승리를 시전 하곤 했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가끔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를 하곤 한다.


아마 그런 집착과 비슷한 면모들이 꼼꼼함으로 표현되는 건 아닐까. 그것들은 은연중에 내 마음속에서 하나로 결부되어 있었다. 아마 둘 다 내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테지. 뭐든 가지지 못한 것은 더 크고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쇼핑몰에서 장바구니를 채울 때처럼 말이다. 음, 역시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그들 사이에는 반드시 관계가 있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를테면 우리 팀장님 같은 경우에는, 게임의 도전 과제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혹여나 가보지 못한 장소가 있다면, 아이템 하나라도 수집하지 못했다면, 게임을 끝냈다고 이야기하질 않는다. 잘못 진행해서 하나라도 놓치면 그 놓친 부분을 수없이 복기하며 아쉬워하곤 한다. 엔딩을 보면 '게임 끝!' 하고 컨트롤러를 놓아 버리는 나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런 대조됨은 업무에서도 드러나곤 하는데, 팀장님의 업무는 너무나 꼼꼼해서 자칫 긴장을 놓치면 대충 처리해 버리고 마는 나의 결과물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바로 옆에서 그런 모습들을 매일같이 보고 있으니까 결국 그 둘, 그러니까 집착과 꼼꼼함을 한데 묶어 상상할 수밖에.


그래서 가끔 아쉽다. 왜 나는 매니아로 자라지 못했을까. 매니아적 취미를 다져놓지 못했을까. 그렇다고 지금부터 매니아적 취미를 다지기엔 소파가, 침대가, 스마트폰이 너무 달콤해서, 그리고 일을 마친 후에도 일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영 기분이 살지 않았다. 뭐, 그런 핑계를 대면서 오늘도 옛날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이지 모드 게임이나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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