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동아리방엔 내 일부가 남아 있을지도
1일 1커밋 #67
이따금 빨간색 점 속에 백몇이니 하는 숫자가 떠있어서 귀찮은 마음으로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방이 있다. 그러니까, 카톡방 말이다. 들어차 있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나 정도는 입을, 아니 손을 굳이 놀리지 않아도 원활히 돌아갈 것만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늘 떠드는 몇몇 이들의 메시지를 감흥 없이 슥슥 스크롤하며 보다가 이내 뒤로 가기 키를 눌러 유유히 빠져나오곤 했다. 소수의 소소한 일상은 누군가에겐 요깃거리겠지만 나에겐 이 정도의 귀찮은 반복 작업일 뿐.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뭐가 달랐냐면 내용이. 글이 아닌 사진이 몇 장 올라온 것이다. 스크롤 중에 튀어나온 사진들에 나는 잠깐 손을 멈췄고, 터치와 확대 재스쳐를 취했다. 그렇게 나는 그 사진들을 가만히 응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진들이 오롯이 그들의 현재 일상만을 담고 있지 않고 나의 과거마저 한데 그러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사진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눈이 건조진 탓에 눈물이 흘렀고, 그래서 눈을 비벼야 했다.
사진은 대학교 동아리방을 담고 있었다. 내 대학교 동아리 단톡 방이었기 때문에 방의 주제에는 어색할 것도 없는 사진이었다. 마침 아직 학교에 근무하는 선배가 있었고, 그 선배는 우연찮게 오랜만에 우리 동아리방 앞을 지나게 되었다고 했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궁금했지만.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옛날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다. 하는 모습이었으면 오히려 금방 카톡방을 닫을 수 있었으련만. 동아리방은 마치 변화를 거부하듯 옛날의 그 모습을 억지로 단편적으로나마 품고 있었다. 나는 내 가슴속에 숨어있던 뭔가를 우연히 발견한 기분이었고, 그래서 이득이라도 본 것처럼 기분이 들뜨고 말았다.
다들 나와 비슷한 감상이었다. 저 소파는 처음 본다느니, 저 책장은 어떻게 아직 쓰냐느니. 어찌 이리 똑같냐느니. 나는 카톡방 내용을 뒤로한 채 다시 사진들을 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그 방 안으로 뛰어들 모양으로 고개를 쭉 빼고 디테일한 옛날을 찾아 나섰다. 저 캐비닛 안에는 아직 내가 만든 회지가 남아있을까, 내가 옛날에 읽곤 했던 그 만화책들은 안녕할까. 하지만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실제로 캐비닛이나 책장을 뒤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질 순 없는 일이었고 결국 난 사진들을 뒤로하고 고개를 다시 원위치시켜야 했다. 사진이 말해주지 않는 나머지는 상상에 맡겨야 했다. 나를 거쳐간 것들의 현재. 그리고 그것들을 거쳐간 새파란 후배들의, 어딘가 나와 친구들을 닮았을 게 분명한 면면들을.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상상의 나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부여잡았다.
다른 것에 나, 우리와 닮은 것을 겹쳐 상상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나는 한창 동아리 생활을 하던 그 새파란 대학교 시절, 서브컬처 동아리를 소재로 한 만화책을 함께 읽어나가며 우리와 그들의 공통점을 찾곤 했다. 새파랗다곤 해도 그 시절은 벌써 졸업반을 앞두고 있었기에, 사실 그때 기준으로도 과거에 빗대 만화책을 읽어나갔다. 이 에피소드의 이 캐릭터는 정말 너다. 이건 정말 우리 같다. 깔깔 웃으면서 만화 내용인지 과거인지 모를 것들을 공유하곤 했다. 심지어 2대째의 내용과 우리가 졸업한 후의 동아리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소문 아닌 소문만으로도 우린 왠지 모를 즐거움을 품었다. 마치 다중 우주의 우리를 관음 하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뭐, 결국 모든 세상을 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즐기고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하지만 나의 파편이 어딘가에 남아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퇴적층처럼 쌓여서 누군가의 누군가에게 대물림된다. 그런 상상들은 왠지 너무 재미있어서 멈추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결국의 결국에는 멈추고 현실로 돌아와서 얼른 현실을 부여잡아야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