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문제가돼서

1일 1커밋 #73

by 김디트

이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제각각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어떻게 보자면 사람들은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문제를 만들어내는 공장처럼 문제들을 찍어낸다. 예컨대 아침, 눈을 뜨자마자 '회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문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곤 하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회사에 가지 않는 답을 내렸고, 그래서 오늘은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를 다 보내고 말았다.


그렇게 많은 문제들은 과연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걸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을 일일 테지만, 나의 경험에 빗대어 보자면 대부분의 문제는 혼자의 힘으로 완전히 해결하기 벅차게 마련이다. 하루에 생산하는 문제가 10이라면 5 정도를 해결할까 말까 하는 정도. 사실 이 수치는 회사에서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을 객관적으로 측정한 결과이다. 아마 다른 문제들도 최대한 노력하면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잉여의 5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사라지긴 하는 것일까.


나의 경우엔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졌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 5만큼의 문제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었느냐. 그 수치들은 고스란히 내일의 나에게 미뤄지고 있었다. 오늘 내가 생산하는 10이라는 문제들 중 5는 어제의 문제를 그대로 반복해서 재생산해낸 일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뭐 이런 식이다. 난 오늘 '언어 관련 책을 읽어야지.' 하는 문제를 생산했다. 하지만 꽤 깊은 밤이 된 지금까지도 해결은커녕 시작조차 하지 못한 걸 보면 아마 내일로 미뤄질 확률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실 이 문제는 어제도 생산했던 문제이다. 대체 어느 날, 언제부터 이 문제를 미뤄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난 꽤 오랜 시간을 이 문제를 생산하면서, 그리고 다음날의 나에게 미루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잔여를 남기고 내일로 사라지곤 했다. 죄책감 말이다. 더군다나 내일로 사라지기 직전까지 마치 서서히 퍼지는 독구름처럼 내 마음을 괴롭힌다. 문제들을 외면하기 위해서 최대한 빠르게 피드백이 돌아오는 딴 짓거리를 찾아 나서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데, 그게 바로 TV를 본다거나 인터넷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었다. 오늘도 꽤 오랜 시간을 소파에 누워서 TV를 봤는데 그게 바로 그 독구름의 소행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생산되는데, 그리고 끊임없이 내일로 사라지면서 독구름을 피워대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아마 나처럼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수많은 시간 관리법, 계획법, 기타 등등의 무슨 법들을 만들어서 문제를 컨트롤하려고 했을 테고. 나도 이번에는 이 방법을 사용해 봐야지 하면서 또 다른 방법론을 찾아냈고, 지금까지는 꽤 잘 활용하고 있다. 이게 신선해서 그런 건지, 정말 나에게 딱 맞아서 그런 건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일일 것이다.


애인은 그런 방법들, 그러니까 단기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이 너에게 정말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난 긴 호흡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구나. 같은 문제를 차근차근 씹어 넘기는 방법으로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나의 문제를 잘게 잘게 나눠서 하나하나 정복하는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프로그래머 식으로 말하자면 divide and conquer, 분할 정복이 나에겐 딱 맞는 해결법이었다. 그에 반해 애인은 딱히 잘게 쪼개진 목표, 그리고 단기적인 당근 같은 게 없어도 우직하게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같은 사람인데 내가 못할 게 뭐가 있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그게 함정이었다. '같은' 사람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는 거였는데. 나의 가능성을 너무 무한대로 믿은 탓에 그 가능성의 한계를 보자마자 침체기에 다다르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10 중에 2를 처리하면서 뿌옇게 독구름이 가득 찬 우울의 방 안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울적해하고 있었던 것이고.


어찌저찌 방법은 찾았고, 10 중 5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은 후련했다. 조금만 후련한 이유는 아마 나머지 5가 만들어낸 독구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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