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74
이따금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성격을 알게 되는 상황이 있다. 사실 주로 짜증이나 분노 같은 것들이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끓어오르는 뭔가를 도저히 참지 못하고 툭 튀어나온 것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렇게까지 분노해야 했던 것일까,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당시의 나를 당최 이해하지 못하겠다. 요새 들어서 조금 심해진 것 같은 이유는 아마 여러 복합적인 스트레스의 문제일까. 아니면 코로나 블루 같은 것일까. 어둠이 차분하게 깔린 시간의 차분한 나는 그렇게 차분하게 과거의 나를 진단할 수 있을 정도로 냉철했다. 온도에도 의지가 있다면 아마 차가움은 영원히 뜨거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냉철해진 나는 그 울컥했던 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채 콧잔등을 찡그려야 했다.
운전을 시켜봐야 그 사람의 진짜 인성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조금 기준점이 애매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초보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인가? 아니면 베테랑인 사람들만 해당되는 건가? 초보까지 포함시킨다면 아무래도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가 자전거 뒤를 붙잡은 엄마에게 '놓지 마, 놓지 마!' 하고 소리치는 것과 비슷한 신경질을 부릴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단편적인 것으로 인성을 파악하겠다니. 역시 불합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인정한다. 나는 기필코 짜증을 내고 말았다. 짜증이 아니었다고 하면 어떻게 둘러댈 수 있는 강도의 짜증이었지만 아무튼 짜증은 짜증이다. 애인과 함께 여주 아웃렛으로 가는 길이었다. 서울 시내가 꽉 막혀서 도저히 경기도 권으로 나서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차선은 많지, 차는 느릿느릿 움직이지. 언제 어느 차선으로 들어서야 할지 간을 보느라 나의 신경은 매우 까칠해져 있었다. 애인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여러 번 입을 뗐지만, 나는 도로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입을 꾹 닫고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애인은 곧 입을 닫아야 했다.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데 말을 이어가는 건 공허할 뿐일 테니까. 그렇게 꽤 오랫동안 운전했다. 그러니까,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이전까지는 미간에 주름을 꽉 채운 채 내비게이션과 정면 사이로만 시선을 오갔다. 애인은 조금 침울한 모습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휴, 드디어 고속도로 다 와간다."
나는 어색하게 정적을 깨며 말을 걸었다. 애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마 그런 느낌이었다. 여유롭게 애인을 살필 정도의 운전 실력이 아직 나에겐 없었다.
도로가 뚫리면서 나도 조금씩 여유를 찾아갔다. 몇 년 전, 회사 동료분이 서울 시내보단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했을 때 '에이 어떻게 고속도로가 더 편해요. 그렇게 빠르게 달리는데.' 하고 대답했던 운전포비아의 내 모습이 촤르륵, 엎어진 사진첩처럼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내비게이션의 화살표 주변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애인에게 말했다.
"도로가 막힐 때는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대답할 겨를이 없었어."
"난 괜찮은데? 딱히 화 안 냈잖아."
"아니, 화를 내서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랬다고.."
나는 조금 쭈글해져서 그렇게 응답했고, 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애인은 그렇게 나의 사과 아닌 사과를 받아주었다. 난 여전히 좀 멋쩍었다. 그리고 차는 계속해서 빠르게 고속도로를 뚫으며 달려갔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결국, 그러니까 이게 내 인성, 본성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그러니까 핑계, 이려나.
아마 세상의 모든 걸 내가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이렇게 이따금 나의 인성을 드러내고 말 텐데. 과연 다음의 나는 또 어떤 방식으로 나의 인성을 드러내고 말 것인가. 핑계는 그만두고 그런 고민이나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겹겹이 들었다. 아마 또 그런 상황이 와도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가 내는 신경질' 운운하면서 슬쩍 발을 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