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이 그냥 반복일 뿐이면 노동

1일 1커밋 #75

by 김디트

조금 자랑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반복을 꽤 잘하는 편이다. 여기서 반복이란 매일 같은 일을 '지속적으로'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 글도 그 반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반복'이라는 범주 아래에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해볼 만하겠는걸'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에 와서도 '해볼 만하냐'라고 하면 글쎄, 하고 말줄임표를 점점이 붙일 수밖에 없겠지만.


오늘은 '코딩 호러가 들려주는 진짜 소프트웨어 개발 이야기'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만났다. 공군 대령인 존 보이드(John Boyd)가 1950년대 제트 전투기의 성능상의 기이한 결함을 연구했다는 이야기다.


전투기를 설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투기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기동성이었다. 미그15기는 더 빨리 회전하고 더 빨리 상승할 수 있었으므로 확실히 F-86보다 더 나은 기동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미그 15기가 항공기 설계자들 관점에서는 더 나은 전투기라고 판단됐지만 전투기 조종사들은 오히려 F-86을 더 선호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미그15기와 일대일로 붙은 싸움에서 열 번 중 아홉 번 꼴로 F-86이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보이드는 전투기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게 해주는 가장 큰 요인은 관측, 방향성, 계획, 혹은 반응속도가 얼마나 좋은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와 같은 관측, 방향성, 계획, 혹은 반응속도가 얼마나 빠른가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전투기 조종사가 관측, 방향성, 계획이라는 사이클을 얼마나 빠르게 반복하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보이드는 반복의 속도가 반복의 질보다 우선한다고 말했다.


그 반복의 속도란 게 뭐였냐 하면, '수동식 조종간'과 '유압식 조종간'의 차이였다. 미그15기는 유압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종간을 움직일 떠 조금 더 많은 물리적인 에너지가 필요했고, 조종간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피로가 쌓여서 결국 반응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글은 이어나갔다.


그리고 저자는 소프트웨어 공학과 단위 테스트, 빠른 반복주기 같은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면 일단 빠르게 반복하고 보라.


그러니까 뭐든 일단 반복하고 보라는, 어떻게 보면 뻔한 말이었다. 하지만 난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치 도덕책에 있는 '어른을 공경하자' 같은 문장을 읽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듯, 반복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 나는 과연 그 반복의 득을 봤는가. 분명 보긴 봤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인격체가 이뤄지는 데 그 반복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실력행사를 했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반복이 정말 다이내믹하고 멋진 변화를 결국엔 불러왔느냐고 하면 그렇진 않았다. 나는 매일매일 반복의 달성에서 오는 만족감과 가시적이진 않은 조금의 성과 정도만을 참가상처럼 받고 뒤로 물러서야 했다.


요는 '일단 빠르게 반복해라'라는 말은 조금 무성의하지 않았나 싶은 거다. 반복 그 자체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빠른 반복을 수년간 해왔음에도 결국 작은 게임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면 그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신체가 되지 못하고 주르륵 미끄러졌다가 다시 올라섰다가 하는 나의 몸을 봐도 분명하다.


소거법으로 생각해보면 나에게, 나의 반복에 부족한 건 역시 그것뿐이었다. '계획'.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명확한 계획'. 아마 명확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매일 반복에 반복을 하면서도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지지부진했던 걸 테다. 내비게이션 없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나 마찬가지일 텐데, 난 그 내비게이션 전원 켜기가 귀찮아서 몇 날 며칠째 운전대를 붙잡고 눈이 뻘게져서 운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 저자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복에 반복을 쌓다 보면 가시적인 목표가 생길 것이고, 그 목표를 다듬어서 세부적인 목표로 가지를 칠 것이며, 결국 구체적인 계획들이 쌓일 테니, 일단 반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즉, 반복이 그냥 무식한 반복만으로 남을 리 없다는 그런 순진무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미 어른이 된 내가 어린아이일 때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아마 그 높은 시선으로는 낮은 곳의 시선이 놓칠 그 무언가를 가늠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글을 읽으며 여기까지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 인터넷으로 연애를 배운 것처럼 뭔가 뜬구름 잡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체 계획은 어떻게 세우는 거야.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감히 시도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하던 대로 그냥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해온 반복이나 하며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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