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욕이 이렇게 하찮아진 이유

1일 1커밋 #76

by 김디트

문득 의욕이 불타오를 때가 있다. 근데 이게 복불복인지라 화르르륵 하고 타오르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어라, 왠지 해보고 싶은걸 하는 수준의 잔열일 때도 있다. 안타깝지만 화르르륵 하고 타오르는 경우는 그다지 빈번하지 않다. 왠지 시간이 지날수록 화르르륵의 횟수는 줄어들기만 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약한 감기가 걸린 게 아닐까 싶은 정도의 그 잔열 같은 욕구는 꽤나 잦은 빈도로 찾아온다. 옛날에는 시도 때도 없이 화르르륵 했다면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감기에 걸린 느낌이다. 사실 영차 영차 화르르륵과 끙끙, 감기 같은 잔열은 닮은 점이라곤 없는데. 온도 빼고는 말이다.


어릴 때와 지금의 차이는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어릴 때 작은 일에도 흥분하면서 즐거워했던 이유는 결국 숙련도와 경험치의 차이였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아마 이 열정의 차이도 그것과 동일선상에 있는 현상일 것이다. 요컨대 이제는 알아버린 것이다. 내가 상상한 것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고를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 옛날에는 길이 한없이 짧아 보였으니 스프린터처럼 잠깐 바짝 달리기만 하면 목표치에 금방 다다를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목표치라는 건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 같은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안다는 건 결국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이런 하찮은 데서도 깨닫게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화르르륵, 은 아니라도 간간히 미열의 통증이 찾아온다. 이를테면 유튜브를 볼 때라던가. 짧고 간단한 애니메이션 같은 걸 보면서 '어라,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라던가. 왠지 그럴 때면 금방이라도 펜을 붙잡고 한번 갈겨 그려보고 싶어 지지만, 결국 그러진 않는다. 옛날이라면 당장이라도 연습장을 꺼내서 연필의 흑연을 거기에 문지르고 있겠지만. 나의 축적된 경험은 '결국 그래 봤자 연습장 몇 장이 쓰레기가 되고 끝나겠지' 하고 속삭이고, 나는 얌전히 거기에 수긍하고 만다.


하지만 그 미열과 수긍의 사이클이 자주 반복되다 보면 왠지 이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어라, 어차피 이렇게 뒹굴거리면서 시간을 버릴 바에는 연습장이라도 몇 장 쓰레기로 만드는 게 나은 거 아닌가?'


그렇게 수긍에는 자그마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몸을 일으켜서 바로 연습장을 펼치진 않는다. 시간과 물이 합심해서 돌을 깎아 내려가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몇 번의 미열과 수긍의 사이클, 그리고 균열. 그런 걸 반복하다 보면 균열이 점점 커져서 그 사이클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거기까지 또 며칠을 소진한다.


그러면 그제야 나는 '어디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고 책상 앞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렇게 자리에 앉으면 만사형통인가 하면, 아쉽게도 그것도 아니다. 책상에 앉아서 또 한참을 시간을 죽인다. 미뤄뒀던 설거지를 하고 책상 정리를 했다가 물도 한 번 마셨다가 카톡도 확인했다가 이리저리 지지리 궁상을 떨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의 결국에는, 마침내 나는 연필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이런 의문이 들고야 만다.


'경험이 쌓이면 효율적이어야 할 거 같은데..'


근데, 옛날의 그 화르르륵, 하는 일사천리 진행과 비교해보면 처절하게 비효율적인 시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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