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77
오랜 친구가 실직자가 되었다. 자발적인 실직자도 실직자라고 해야 할까. 꽤 오래전부터 지쳤다고 그만 하고 싶다고 끝없이 투덜거리던 친구였기 때문에 친구의 '끝났다'는 연락은 나 마저도 '드디어' 하고 후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아무튼 끝난 건 끝난 거고.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말들이 턱 끝, 아니 손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 왠지 효과는 없되, 나의 잔소리꾼 기믹만 더욱 공고히 할 뿐일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슬몃 '집에서 쓸데없이 시간 죽일 거면 서울로 와서 우리 집에 며칠 있던가'라는 식의 카톡을 보내고 말았지만.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친구에게 일부러 연락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구를 굳이 떠올리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야 또 잔소리만 하게 될 게 뻔했으니까. 룸메이트들에게 하는 잔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의 신경까지 긁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많은 잔소리를 날리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굳이 친구의 휴식을 외면하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또 다른 친구가 입을, 아니 손을 뗐다.
'우리 집에 안경 언제 가지고 갈 거냐.'
이전에 경기도로 올라왔을 때, 실직한 친구는 이 친구의 집에 안경을 두고 갔었다. 실속과 의의를 모두 챙기는 적절한 말이었다. 친구는 한참 있다가 입을 뗐다. 한번 가야지 하면서 말이다. 근데 연락이라고 온 시간이 새벽이었다. 아마 또 폐인처럼 지내면서 밤낮이 바뀐 모양이지 싶어서 잔소리가 몇 발 장전되었지만 또 꾹 참아야 했다.
'그럼 다음 주에 갈게.'
그 후론 이런 식으로 스케줄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언제 만날 거냐, 그럼 만나서 뭘 할 거냐, 어디서 잘 거냐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 안경을 가진 쪽이 '애를 봐야 하니 자는 게 애매하다. 차라리 다음에 보자'라고 했고 결국 우리 만남은 파투가 났다. 실직한 쪽은 되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듯이 또 잠수를 타버렸고, 우리 카톡방은 마치 소방관이 소화를 끝내고 난 후에 남은 잔해처럼 변했다. 거 참 만나기 힘든 친구들이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나도 언뜻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우리의 만남이 이렇게, 마치 노동 같은 것처럼 변했을까. 그 옛날, 이들과 함께 어울릴 때의 만남은 이런 게 아니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몇 시까지 너희 집으로' 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게 만남이었다. 스케줄을 체크해야 할 정도로 스케줄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만나서 뭘 할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만나는 것 자체로 즐거울 수 있었다. 마치 입이 심심해서 과자 봉지를 뜯는 것처럼, 집안이 적적해서 TV를 켜는 것처럼 주말이 되면 이들과 만났고, 웃었고, 즐겼다. 그런데 지금은 만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마치 야근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것과 비슷한 마음을 품게 되다니.
이런 막막함과 피로감 같은 건 스케줄을 잡는 중에도 있었다. 나는 무리해서 일정을 들이밀었다. '산이라도 오를까? 바다라도 갈까?' 조금 활동적인 걸 함께 하면 왠지 그 활력 넘치던 그때의 우리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역시 심드렁했다. 사실 말한 나조차도 심드렁했다. 피로감이 가중될 뿐이었다. 생각만으로도 피로한 일정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에 친구들과 함께 했던 대부분의 일들은 모두 그 '생각만으로도 피로한 일정'과 결이 비슷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변했고, 끊임없이 피로했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말았다. 좀 씁쓸했지만, 아무튼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입술을 조금 달짝 거리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변화가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하나 변하지 않은 건, 나는 잔소리쟁이라는 것 정도일 것이다. 생각난 김에 다시 친구에게 뭐 하고 있는지 연락해 봐야겠다. 글을 쓰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