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되감기 하기

1일 1커밋 #84

by 김디트

아마 영화는 내가 중학교 시절, 교과서 끝자락에 자그마하게 조금씩 그려 쌓아 가던 그 뼈대만 있는 캐릭터들이 움직였던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임을 연출할 것이다. 교과서에 손가락을 얹고 파라라락, 종이를 빠르게 넘기면 그 뼈만 앙상항 캐릭터들은 힘겹게 발을 옮겼고, 손을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수없이 많은 동일한, 하지만 조금씩 다른 동작을 그려내야 했다. 그 진득하고 귀찮고 오랜 시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결국 그 캐릭터는 발을 살짝 떼어내기만 하고 차마 딛지 못한 채로 평생 남게 되었다. 아마 완성되지 못한 수많은 필름들도 그 교과서 귀퉁이의 낙서와 같은 운명에 처하고 말았을 테지.


인생을 영화로 비유하곤 하는데, 쉽사리 끝을 볼 수 있는 영화와 비교하면 인생은 정말 길다. 필름으로 치환하자면 몇 통이 필요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프레임으로 치환하자면? 과거의 그 뼈대 캐릭터가 필요했던 교과서 장 수의 대체 몇 배가 내 인상의 장면일까. 대체 몇 권의 교과서를 쌓아 올려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영화로 그릴 수 있을까. 잠자는 장면을 제외한다고 해도 상상하기도 왠지 죄스러울 정도의 분량을 살아왔다.


그렇다면 영화처럼 인생을 돌려서 볼 수는 없을까? 몇 분째의 장면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돌려서 보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할 순 없을까? 아쉽게도 세상은 영화 상영기처럼 다양한 기능을 구비해 두지 않아서, 딱 한번 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더 이상 다시 되돌릴 수도 없을뿐더러 빨리 감기도 불가능하다. 물론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도 불가능. 할 수 있는 거라곤 재생뿐이다. 마치 그 옛날, 타이머도 리모컨도 없이 약풍 강풍만 조절 가능했던 투박한 선풍기가 그런 것처럼 절대 고장 나지 않고 재생된다는 단 하나의 장점만 있는 재생기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되려 방법이 너무 많아 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방법이란 바로 사진을 찍는 것. 사진은 그 시간, 그 장면을 남기는 가장 간편하고 오래된 방법이고 꽤나 유효하기까지 하다. 나도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보낸 며칠 되지 않은 그 기억들을 반추하는 데 사진을 꽤 유용한 보조도구로 사용했다. 애써 돌이켜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남아있는 장면은 그 상황을 쉽게 연상하게 해 준다. 마치 사진의 장면을 통째로 복사 붙여 넣기 해서 뇌 속으로 집어넣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옛날에는 사진 한 번 찍기 위해서 수많은 준비물이 필요했다. 핸드폰이 생기고, 그 안으로 작은 카메라가 들어가고 나서도 쉽지는 않았다. 그 오래된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는 화질도 떨어지고 속도도 떨어지는 조악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이제는 무슨 새로운 기기가 나온다고만 하면 거기엔 고성능 카메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달려있게 되었다. 태블릿, 노트북, 핸드폰,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 더군다나 이제는 사진 촬영의 편의성을 위한답시고 렌즈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래서야, 얼른 사진을 찍으라고 등 떠미는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진이 유용하다는 건 확실하지만. 하지만 어쩐지 주저하게 되는 건 왜일까. 나의 그 주저함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진에는 미묘한 왜곡이 들어간다. 특히 광각 렌즈는 '이건 좀 심하게 왜곡됐는데' 싶을 정도로까지 왜곡해 버린다. 사진의 왜곡은 어쩐지 필연적인 면이 있다.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인지, 예전부터 뽀샵이니 뭐니 하며 각자 개성을 담은 왜곡을 삽입했고, 이제는 그 귀찮은 작업까지 단축화 시킨 여러 카메라 앱이 등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아마 나의 촬영의 주저함에는 바로 이 이유가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바로 사진을 찍는 바로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점. 마치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가방 속에 마구 쟁여두고 바깥으로 나서는 것과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카메라를 대하게 된다는 점. 이 순간, 이 장면을 놓치면 정말 큰일이라는 바로 그 조바심 때문에 카메라를 끄집어내서 애써 촬영을 하다 보면, 결국 조바심 때문에 정작 중요한 그 생생한 경험들을 모두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더군다나 그렇게 찍은 결과물이 엉망진창이라면? 난 그 순간도 놓치고 사진도 놓친 희대의 멍청이가 되는 것이다. 마치 영화 최고의 클라이맥스 때 팝콘과 콜라에 정신이 팔린 거나 마찬가지.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을 카메라 없이 온전히 즐기려 힘썼다. 아니, 힘썼다기보단 도피에 가까웠다. 그냥 카메라가 없는 셈 치고 살았다. 영화로 친다면 평론 하나 참고하지 않고 끝까지 내 마음 가는 대로 보는 것에 가까울까. 그리고 정말 만족스러웠느냐고 하면, 글쎄. 여러 가지 부가적인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했으나, 가장 나에게 치명적이었던 문제는 바로. 나는 기억력이 너무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 순간을 정말 100% 완벽하게 즐겼다면, 그렇게 완벽히 즐겼다는 증거가 있어야 할 텐데. 내 기억력은 빠르게 그 증거들을 소각했다. 지금에 와서 내가 되돌려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사진에 근거한 장면들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어느 과거, 어느 시점. 결국 나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를 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카메라와 함께 많은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마치 책갈피처럼. 마치 지금 내가 바탕화면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박제해 놓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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