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85
창의력에 관한 글을 읽던 중이었다. 어릴 때의 놀이와 창의력에 관한 글이었는데, 어른의 지도 같은 게 없이도 대충 두 살 반에서 열 살까지 아이들은 상상놀이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상상놀이. 약간 직역한 감이 없잖아 있는 단어이지만 맥락적으로 어떤 행위를 말하는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요컨대 상상력을 놀이의 핵심으로 두는 그런 전반적인 놀이들을 말하는 것이렸다. 책을 읽다가도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고 나면 왠지 뿌듯해진다. 어떤 것을 완전히, 정말 완전히는 아닐지 몰라도 완벽하다고 오해할 정도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뿌듯했고, 그 후로 많이 시무룩했다. 그 '상상놀이'가 나에게는 이제 남아있지 않다는 걸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는 공상을 정말 많이 했다. 무딘 기억력과 그 공상하는 시간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때가 많았다. 엄마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반드시'에 꾹꾹 힘주어 말했던 것들도 여름 땡볕 아래서 물 들이켜듯 시원하게 말아먹곤 했다. 그런 연고로 눈썹 사이로 내 천자를 깊게 새긴 엄마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수많은 꾸중들 덕분에 내가 공상을 많이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점이 조금 재미있는 지점.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가로지르던 그 시절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레고 놀이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레고들을 조립해서 이런저런 모형들을 만들고 그 모형들을 손으로 이리저리 조작하며 역할극을 한다. 상영되는 역할극은 주로 로봇물이다. 선가드 같은 로봇물이 유행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람 모양의 레고에 여러 조각조각의 다른 레고들을 부착시켜서 좀 더 커다란 사람 형태를 만들고는 로봇이라고 우기며 흔들어댔다. 그 로봇(이라고 우기는 어떤 덩어리)의 손에 좀 더 허접하게 만들어진 다른 덩어리들은 나가떨어졌다. 지금은 그냥 '나가떨어졌다'라고 축약하고 있지만 아마 좀 더 길고 유치하지만 순수한 서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그 서사를 만들어내고 상영하는 절차, 거기에서 나오는 재미가 있었던 걸 테지. 저녁이 되기 전,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다가 집으로 달려 들어와서 TV 리모컨을 붙들고 TV 애니메이션을 본 후의 나에게는 창작욕이 가득했고 말이다. 그래서 저녁 늦게까지 레고 통을 쏟아부어, 바닥을 한껏 어지럽힌 채 열심히 레고 조각들을 만지작거리곤 했던 것이다.
아마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을 테지. TV 애니메이션이 의례히 그렇듯이 비슷한 플롯 아래에 세부적인 묘사들만 조금씩 바뀌면서, 뭐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마치 포켓몬스터의 로켓단이 '오늘도 역시 납니다' 하면서 날아갔듯이 내 손 안에서 만들어진 그 작은 악역들도 비슷한 퇴장을 수차례 겪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지금 제대로 복각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유치한 이야기라도 나는 한참이나 우수에 젖은 눈빛과 표정으로 그걸 몇 시간이나 반복해서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그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바로 지금의 내가 그 시절에는 놀이처럼 간단하게 하던 그 방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그냥 레고 통만 냅다 부어놓고 손가락만 조금 움직이면 할 수 있던 것들, 그런 공상, 그런 이야기, 그런 상상놀이를, 이제는 마치 꾸역꾸역 복역 기간을 채우고 있는 장기 복역수처럼 해나가야 한다니. 그러니 쉽사리 이야기를, 뭔가를 만들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간단함과 거기서 나오는 즐거움 같은 것들이 괜히 그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 레고 놀이를 떠올리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더 불편해졌는데, 그 이유 역시 너무나 어른의 것이다. 온갖 레고 시리즈의 레고들을 마구 한데 모아서 섞어둔 그 레고 통, 그 각각의 레고들을 온전한 상태로 보관하고만 있었으면 지금 대체 얼마일까 따위를 생각하게 되니 원. 아마 지금 그 레고들이 내 손에 있다면 레고 놀이 중 잃어버린 작은 레고들 때문에 단단히 뿔이 나서 그 어린 나의 머리를 마구 딱콩 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