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부러워서 잠이 안오네, 그 작은 열정조차

1일 1커밋 #86

by 김디트

한참 일에 집중하고 있던 차였다. 한참 집중하고 있었다곤 해도 늦은 밤이었다. 8시, 9시가 넘어갈 쯤이었을까. 집은 너무나 높지만 너무나 낮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내 시간 감각을 자주 무디게 했다. 무슨 뜻이냐면, 남산 케이블카가 분주하게 왕복할 정도로 고도가 높은 곳에 있지만, 그럼에도 지하 집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태양과의 거리차가 웬만한 아파트 고층과 맞먹을 정도였음에도 태양의 그 밝은 기운의 덕을 전혀 받지 못하는 집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늦었다. 내 피로감이 그 깊은 시간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피로하고 나른한 저녁과 밤의 사이. 현관이 삑삑삑삑 삐리릭 하더니 열렸다. 나의 동거인 둘 중 하나가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우당탕 쿵쾅 하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려왔고, 나는 예상치 못한 소리에 한쪽 눈을 살짝 찌푸려야 했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모니터에서 눈을 완전히 떼어내지 않고 곁눈질로 그 소리의 근원을 훑었다. 동생이었다. 그냥 동생은 아니고 우당탕 쿵쾅 소리가 묻어있는 동생이었다. 동생은 박스 두 개를 마치 축구공 드리블이라도 하듯 발로 밀며 거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왔다!"


뭐가 왔는지 물을까 하다가 난 금세 동생이 그제 한 말을 떠올렸다. 그제, 동생은 늘 그렇듯이 유튜브를 큰 소리로 튼 채 방 안에 콕 박혀 있었는데, 그러다가 마치 왕관의 금 무게를 재는 방법이라도 깨달았다는 듯 방문을 쾅 열어젖히며 '나 미싱기 샀다!' 하고 소리쳤었다. 나는 그날도 거실에서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었고, 그래서 곁눈질을 흘끔할 뿐이었다. 그리곤 곧 궁금증에 '믹싱기?' 했는데, 동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싱기' 했다. 기억자 하나 차이로 나는 미러볼 아래서 판을 긁으며 둠칫 둠칫 리듬을 타는 동생에서 아른한 불빛 아래서 두다다다 천을 꼬매는 동생으로 얼른 상상의 이미지를 치환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동생 방 TV에서 재생 중인 유튜브에서 밑단이 어쩌니 재단이 어쩌니 하는 왠지 흔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미싱기. 왜?' 동생은 해맑게 웃으면서 기장 줄이고 하는 거 맡기면 돈 아까우니까, 싸구려 미싱기를 샀다고 대답했다. 나는 여전히 키보드를 미싱기 바늘 두드리듯 도도도 두드리며 '익숙해지면 나도 해줘' 따위의 말을 했더랬다.


그랬던 그것이 마침내 도착한 것이었다. 아마 온 지는 제법 된 듯 했지만, 내가 하루 종일 집 밖으로 나가질 않아서 집 앞에 그 택배들이 쌓여있는지도 몰랐던 거다. 동생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뜯듯이 하루종일 방치되어 있던 그 미싱기 박스를 뜯어 헤쳤다. 하루종일 집 앞에서 동생이 오길 고대하며 기다리던 그 미싱기는 생각보다 귀여웠고, 또 단단했다. 거실 테이블에 얹어 놓고 전선을 연결하자, 갑자기 두두두두 소리와 함께 작동했기에 동생은 페달을 밟아야 동작해야 하는데 하며 조금 당황했다. 얼른 코드를 뽑고 쓰레기 치우듯 한쪽으로 밀어둔 설명서를 집어 들어 가만히 읽어나가더니 이내 페달을 밟을 때만 동작하도록 설정했다.


동생은 한참 동안 그 미싱기를 만지작거리더니, 동봉된 천을 이리저리 가져다대며 몇 번 시범삼아 선을 박아넣었다. 물론 삐뚤빼둘했다. 내가 깔깔 웃으니, 오기라도 붙었는지 또 천과 미싱기를 붙들고 한참 꼼질거렸다. 그러다 결국 나아가서는 바지를 끄집어내고, 안 입는 옷을 끄집어내 조각을 내고, 그걸로 바지에 내놓은 데미지 부분을 덧대어 꾸미기 시작했다. 원래는 옆 재봉선을 터버리고 작업한 후 다시 재봉하는 게 편하다고들 하는데, 본인은 막 작업을 해보는 터라 자신이 없다며 그 좁은 바지통을 꾸깃꾸깃 미싱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조금 흥분한 동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늘을 교체하는 걸 잠깐 도왔다가, 동생이 바지에 처리한 부분을 보고 생각보단 괜찮은데, 따위의 호응을 해주다가, 그러다가 문득 말했다.


"넌 참 취미가 많네."


동생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오토바이도 그랬고 반지 만들기도 그랬고 스케이트보드도, 스노보드도,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번엔 미싱이었고 말이다. 동생은 약간 비난조로 들었는지 민망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싶어 얼른 '아니, 취미 많은 거 좋은 거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지.'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참 작업 중인 동생을 뒤로 한채 방으로 들어왔다. 동생이 미싱기로 바지를 박는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침대에 누웠다. 왠지 나도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었는데, 금세 머리가 아파와서 이내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마치 넷플릭스 영화라도 고르듯이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해 거치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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