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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온 Sep 01. 2024

'여유로움', 바쁜 도시의 삶만이 정답은 아니다.

장점 2. 낮은 삶의 피로도는 청년도 여유를 즐기게 만들어준다.

생각보다 지방에는 수도권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상대를 만나, 아이를 낳고 자리 잡은 사람들이 꽤 많다. 1년쯤 생활을 하다 보니 -아니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들이 왜 정착을 선택했는지 깨닫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삶의 피로도가 낮다는 점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정말 큰 장점이다.




출퇴근마다 1시간 이상 타는 지옥철과 광역버스도,

미친 듯이 오르는 물가에 식비 걱정도,

비싼 월세에 허덕임도, 이곳에는 없다.


지방의 대부분의 회사는 출퇴근에 통근버스를 운영한다.

타 지역 사람들을 위한 기숙사나 사택을 운영하며, 그게 아니라면 숙소비를 지원한다. 즉, 월세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한 신혼부부들은 몇 년 간 낡은 사택에 거주하며 돈을 모으고, 서울에 비해 훨씬 싼 값에 자가를 매입해 이사를 나간다. (ex. n 년 제한, nn만원 한도 실비제공 등) 


통근버스는 어지간하면 사택과 기숙사를 지나간다. 경기권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1년에 평균 한 달을 대중교통에서 보낸다고 한다. 지방 기숙사에 거주하는 직장인은 출퇴근버스에 몸만 실으면 30분 내로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눈만 뜨고 씻은 뒤 작업복을 갖춰 입고 버스만 타러 나가면 된다.


보통 삼시세끼 밥도 제공된다. 제조업의 공장은 24시간 생산공정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공장은 부지의 가격 때문 에라도 도심과는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하며, 가까운 곳에 변변한 식당조차 손에 꼽는다. 어지간한 중소기업도 아침, 점심, 저녁, 야식시간까지 최소한의 식사가 제공된다. (월급에서 공제되는 경우도 있으며, 무료 복지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맛있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의 밥은 원가절감에 매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덕분에 밥값은 정말 많이 아낄 수 있고, 돈이 없어도 굶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각자의 명목으로 지방근무 비용도 추가지원되는 경우도 많다. 수도권 본사에 다니는 사람보다 월급을 조금 더 받는다는 거다. 본가방문비, 정착자금, 문화생활비 등 평생 주지는 않고 초기 몇 년 간 지급하는 곳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일상의 시간적, 물질적 편안함은 삶의 질을 크게 높여준다.


통근시간 자체가 짧은 데다, 셔틀에서 자면 되니 마음도 좀 더 편하니, 평일에도 내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쓸 수 있다. 정착을 했을 경우 가족과 더 길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자기계발을 하려 해도 시간이 조금 더 풍족하다. 솔직히 나중에 수도권에서 일을 하게 되고, 편도 1시간 이상을 출퇴근으로 쓰게 된다면, 이 생활과 이 여유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식비도 아끼고, 월세비도 아끼고, 월급이 조금 더 들어오는 것은 내 통장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돈을 쓸 곳은 더 없는 환경이다. 밥값도 덜 들고, 주거비도 덜 들고, 심지어 옷도 작업복만 입으면 되는데 돈을 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래서 지방근무를 하면 돈이 잘 모인다고들 한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이 정도도 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지방근무를 하러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본사에서 일하는 사람 그 누구도 "지방에서는 사택 주는데 우린 왜 안 해줘요!!"를 불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택을 준다 해도 이곳으로 내려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도 이 부분은 정말 큰 장점이 맞다. 서울에서 정신없고 사람 가득한 복작복작한 생활에 늘 지쳐 원룸에 들어가고 있다면, 이곳에서는 여유와 평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 걱정거리가 적다는 점. 이는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많음을 의미한다.




나는 늘 바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나는 늘 답답했다. 시간이 있어도 다양한 즐거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쇼핑을 하기 위해서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만 했다. 대중교통은 불편했고, 차가 없는 나는 택시 없이는 어딘가로 이동하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나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백화점을 돌며 쇼핑하는 것보다, 가진 옷을 깨끗하게 빨래해 널고 집을 청소한 뒤,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사람 많은 카페에 찾아가는 것보다, 자연이 펼쳐진 여유로운 카페에 앉아 산들산들 부는 바람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을 수도권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쉽게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많은 사람은 마음의 여유도 많기 마련이다.

요즘 청년세대가 느끼는 높은 집값과 살기 팍팍한 분위기는, 지방에서 나고 자라 지방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에게는 체감하기 조금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조금만 열심히 돈을 모으면 집도 살 수 있을 것 같고, 가족도 꾸릴 수 있으며, 아이도 키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딩크보다 자녀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모든 사람이 도전적인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추구하는 방향성이 '안정'인 경우에는, 지방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다. 삶에는 다양한 정답이 있고, 이곳의 삶도 하나의 정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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